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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형의 오독오독]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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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9차 국제반부패회의(IACC)' 특별세션에서 연사로 나선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화면 오른쪽)가 김선욱 숭실대 교수와 대담을 하는 모습. 샌델 교수는 "미국인들과 다르게 한국인들은 기회의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상승의 벽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 인식이 경제와 사회를 개혁하는 첫 걸음"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마이클 샌델 교수와 전현희 위원장의 강연 영상을 1일 녹화해 2일 오후 2시부터 제19차 IACC 홈페이지에 공개한다.(사진제공=국민권익위원회)

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9차 국제반부패회의(IACC)' 특별세션에서 연사로 나선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화면 오른쪽)가 김선욱 숭실대 교수와 대담을 하는 모습. 샌델 교수는 "미국인들과 다르게 한국인들은 기회의 불평등에 따른 사회적 상승의 벽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 인식이 경제와 사회를 개혁하는 첫 걸음"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마이클 샌델 교수와 전현희 위원장의 강연 영상을 1일 녹화해 2일 오후 2시부터 제19차 IACC 홈페이지에 공개한다.(사진제공=국민권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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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국공' 사태로 떠오른 공정성 시비, 승자-패자의 이분법은 사회적 결속력 파괴

민주주의의 약화가 트럼프 정권 탄생시켜, 공동선 회복으로 민주주의 회복해야



우리 사회는 공정에 민감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당선됐다. 공정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가치다. 그 바탕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신화가 있다.

공정성과 관련해 올해 가장 많이 언급된 사건이 '인천국제공항 보안 검색요원 정규직 전환', 이른바 '인국공' 사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다. 이에 2017년 이미 정규직화가 예고됐던 보안요원들은 일정 과정을 거쳐 본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됐다.


이는 큰 공정성 시비를 낳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평균 연봉 9000만원이 넘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이다. "몇 년간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시험 준비만 해왔는데 쉽게 입사한 사람들이 공항공사 정규직으로 뽑히다니"라는 분노가 불공정 지적의 주요 논리였다.


뉴스가 쏟아지고 취업 커뮤니티에서 반발이 일었다. 인국공 사태는 시험이라는 가장 공정한 과정도 거치지 않고 '꿈의 직장'의 정규직을 안겨준 불공정 정책의 상징이 됐다.

정말 불공정한가. 시험 보고 입사하는 것만 이 정의로운 방법인가. 경력을 인정받는 게 왜 부정의인가. 일해야만 하는 사람과 집안의 도움으로 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애초부터 동등한 기회의 선상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인국공 사태에서 기계적으로 가장 공정한 지점은 이렇다. 첫째, 보안요원은 기존 공채 같은 시험을 본다. 둘째, 공채 지망생들은 보안요원들에 준하는 경력을 쌓아야 응시할 수 있다. 두 가지만 만족하면 그나마 완전한 공정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본 적 있는가.


지망생도 언론도 공채 시험의 공정함만 주장했다. 언제부터 '내 세상 안의 공정'이 공정의 표준이었나. 시작점은 달라도 동시에 치르는 시험이라는 단순한 공정만 만족하면 그것이 공정이라 말할 수 있나.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 인문학 바람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 교수의 신작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 지점부터 중점적으로 파고든다. 그가 책에서 가장 많이 거론하는 능력주의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배려하며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하는 것이다.


이런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평한 기회 제공과 능력 발휘의 보장이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며 이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통제하기란 점차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저자는 능력주의가 되레 성공한 사람에게 "나만 잘해서 성공한 것"이라는 오만을 갖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패배주의를 안고 살아가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샌델 교수는 성공한 사람들이 그 위치까지 이르는 과정에 사회적 배경과 운 같은 복합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성공한 사람들은 온전히 자기만의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오판해 패배자를 깔봐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 결속력을 떨어뜨리고 민주주의를 역행하게 만든다.


샌델 교수는 이렇게 약해진 결속력의 증거로 극단적 포퓰리스트의 등장과 학력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린 투표성향을 제시한다. 약화한 민주주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인물들을 탄생시켰다는 얘기다.


샌델 교수에 따르면 능력주의 바탕의 성공신화는 수명을 다한 지 이미 오래다. 미국인의 70%는 가난한 사람이 자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믿는 유럽인은 약 35%에 불과하다. 그러나 계층이동은 독일ㆍ덴마크 같은 유럽 국가에서 훨씬 많이 일어난다. 미국에서 흙수저 대다수는 중산층에조차 이르지 못한다. 최상위층에 도달하는 경우는 겨우 4~7%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슬로건은 애초 실현불가능한 것이었다.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 자체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게 그나마 완전 평등의 근사치를 찾는 방법이다. 평등한 기회를 기계적으로 부여하면 아무리 과정이 공정했다 해도 정의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결과가 정의로우려면 기회부터 가점을 달리해야 한다.


장강명 작가는 저서 '당선, 합격, 계급'에서 우리 사회 곳곳의 계층이동 울타리를 낮춰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다면 '나만의 공정'에 매달리는 풍토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자기도 이것이 이상론인 줄은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샌델 교수의 대안은 공동선 회복이다. 이 역시 이상론이다. 고착된 상황을 당장 해소할 방법은 당연히 없다.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은 어찌 됐든 다시 민주시민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은교(2012)'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대사 하나가 생각난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인한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니다." 이를 오늘 주제에 빗대어보자.


"너의 성공이 단지 너만의 노력으로 인한 상이 아니듯 누군가의 실패도 그만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니다."


[이근형의 오독오독]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능력주의는 과연 공정한가 원본보기 아이콘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지음/함규진 옮김/와이즈베리/1만80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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