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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탐욕과 모럴해저드, 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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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있다. 옵티머스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폰지 사기’의 그 폰지가 맞다. 폰지는 1920년 국제반신권이란 상품을 매개로 다단계 금융사기를 쳐 은행 몇 개를 도산시킨 인물이다. 국제반신권은 편지를 외국으로 보내고 다시 발신인에게 답신을 할 때 추가적인 우편 요금을 면제해 주는 것인데 1차 대전 직후 유럽의 인플레이션으로 유럽에서 국제반신권을 사서 미국에서 팔면 차액이 발생했다.


폰지는 이를 이용해 3개월에 2배를 돌려주겠다면서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1920년 1월 한 달 동안 18명으로부터 1800달러를 모으는데 그쳤지만 7월말이 되면 하루 100만달러(현재가치로는 1200만달러)가 모일 정도가 됐다. 초기 투자자들은 저소득층이 많았지만 이때쯤이면 상류층의 뭉칫돈이 들어왔다. 한꺼번에 1만달러를 맡기는 은행가도 있었다.

문제는 국제반신권을 이용해 차액을 볼 수 있었지만 처음 1800달러를 투자한 18명의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데도 5만3000장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불어난 1만5000명이 배당금을 받으려면 타이타닉호만한 배에 국제반신권을 가득 실어와 팔아야 했다. 애초부터 정상적으로는 지급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이 이처럼 몰린 것은 초기 투자자들에게 폰지가 배당금을 지급했기 때문인데 폰지는 이 배당금을 추가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충당했다. A고객의 배당금을 B고객의 투자금으로 충당하고, B고객의 배당금은 C고객의 투자금으로 충당하는 식의 다단계 금융사기였던 것이다.


찰스 폰지가 다단계 금융사기로 미국을 발칵 뒤집은 지 100년 후 대한민국 국정감사에서 폰지 사기가 도마에 올랐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해 연 2.8% 수익을 준다는 옵티머스의 감언이설에 무려 1조5000억원이 몰렸다. 시중 금리가 1%대인데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는 안전자산에 투자하면서도 3% 가까운 수익을 낸다니 전파진흥원 같은 준정부기관이 투자를 하고, NH투자증권 같은 국내 대표 증권사들이 펀드를 팔았다. 펀드를 수탁한 곳은 4대 시중은행인 KEB하나은행이었다.


국내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추천하고 준정부기관이 투자한 곳이니 일반 투자자들이 몰린 것은 당연지사. 전세자금, 자녀 결혼자금을 넣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직 장관까지 이 대열에 동참했을 정도니 폰지 사기가 제대로 성공한 셈인데 정작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 사기는 시작조차 안됐을 수 있었다. 공공기관 매출채권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출채권이란 쉽게 말해 외상 판매대금을 채권화한 것을 말하는데 공공기관이 민간기업들과 공사 계약을 할 때는 공사대금을 계약당사자에게 5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또는 30일마다 공사 진행률에 따라 지급하도록 국가계약법에 정해져 있다. 외상판매 대금이 존재할 수 없으니 이를 기반으로 한 매출채권도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아주 상식적인 의문만 가진다면 폰지 사기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폰지 사기가 성공하는 것은 결국 돈에 대한 탐욕과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안전하게 돈을 벌고 싶은 욕망과 금융기관들의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는 문구 뒤에서 수수료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의 틈 사이에서 폰지들은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 셈이다.


높은 수익에는 그만큼의 위험이 따르게 돼 있다(high risk, high return). 세상 어떤 금융상품이나 자산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누군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사기라고 의심을 해야 한다.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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