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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판소리인 듯 연극인 듯…경계 허문 '1인3역 소리꾼'의 흥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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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이방인의 노래' 공연, 소리꾼 이자람 "발이 달라졌어요"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썰어놓고 씹어먹고 썰어놓고 씹어먹고 썰어놓고 씹어먹고…."


줄달음치는 이자람(41)의 소리에 객석에서는 흥이 오른다. 고수도 소리에 맞춰 북소리를 빨리 하며 흥을 돋운다. 소리꾼 이자람이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 중 한 장면이다.

이자람은 뜻밖의 스테이크에 이게 '웬 횡재냐!'며 고기를 썰어먹는데 정신없는 이주 노동자 '오메로'를 표현하고 있다. 극에 나오는 인물은 크게 세 명. 오메로와 그의 아내 '라사라' 그리고 카리브해에 있는 오메로 고국의 전 대통령이다. 쿠데타로 쫓겨난 대통령이 스위스 제네바로 요양차 왔다가 병원에서 앰뷸런스를 운전하는 이주 노동자 오메로를 만나는 게 이야기의 뼈대다.


'이방인의 노래'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단편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Bon Voyage, Mr. President!·1995)'을 이자람이 작창한 판소리다.


잔소리꾼 아내 라사라 앞에서 오메로는 고양이 앞의 쥐 꼴이다. 오메로를 표현할 때 이자람은 말도 느리고 눈도 꿈뻑꿈뻑 거린다. 하지만 라사라를 표현할 때는 눈을 부릅뜨고 눈꼬리가 올라가고 말도 빨라진다. 영락없이 연극배우가 1인극을 하는듯 하다. '이방인의 노래'는 소리꾼 이자람의 끼와 재능을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원맨쇼 무대다.

'이방인의 노래' 공연 장면  [사진=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이방인의 노래' 공연 장면 [사진=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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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노래'는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초연했다. 이자람은 4년만에 다시 하는 공연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무대"라고 했다. 초연 때는 의자 하나만 두고 공연했다. 이번 공연의 무대는 조명이 은은한 바처럼 꾸며졌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무대 위에 십 여개 둥근 테이블이 놓였고 관객이 앉아있다. 이자람은 테이블 사이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극을 보여준다. 소리는 더 깊어졌고 연극성은 더 짙어졌다. "썰어놓고 씹어놓고…" 대사를 할 때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관객과 마주앉아 실제 스테이크를 함께 먹는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이자람은 공간을 바꾸니 "발이 달라졌다"고 표현했다. 동선이 많아지고 움직임도 커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전통 공연을 하다보니 이번 공연에서 보여줘야 할 빠른 움직임이 내 몸에 없더라. 그래서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양조아 배우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1인극을 하는 배우의 움직임을 배웠다."


이자람은 이전에도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사천의 착한 사람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노인과 바다'를 판소리로 만들어 공연했다.


"작품을 고를 때 기준은 판소리랑 어울리겠다가 아니다. 이걸 하고 싶다는 내 마음이 90%를 차지한다. 마르케스 소설을 읽은 뒤 낮잠을 잤는데 자고 일어나서 박지혜 연출에게 '나 이거 해야겠어. 왠지는 모르겠는데 해야겠어'라고 했다. 공연을 하고 보니 판소리랑 어울리게 됐는데 소리꾼이 이야기를 가져왔기 때문인 것 같다."

'이방인의 노래' 공연 장면  [사진=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이방인의 노래' 공연 장면 [사진=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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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선택한 뒤 이자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보통 6개월 이상 걸린다. "나의 이야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에피소드를 덜어내기도 하고 추가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스테이크 먹는 장면이 중요하지 않다. 라사라와 대통령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소설에 없는 내용이다."


이자람은 '이방인의 노래'를 대만 국립극장, 오키나와 예술제. 프랑스 아비뇽 연극제 등 해외에서도 여러 번 공연했다. "외국인들의 반응은 늘 좋다. 특히 판소리라는 장르가 가진 연극성을 외국인들이 좋아한다. 자신들이 아는 연극의 연극성보다 더 연극적이라는 애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외국인들이 어디서 연극을 공부하느냐고 묻는데 나는 '모르겠어. 그냥 판소리를 했는데 연극적이구나'라고 답한다."


그는 "판소리라는 장르가 사실 굉장히 연극적인 상상의 힘이 있는 장르인데 한국에서는 그냥 전통음악으로만 치부된다"며 "나는 판소리의 연극성, 풍자성, 문학성, 음악성을 균형감있게 보여주려는 아티스트라고 외국인에게 답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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