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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광화문광장과 육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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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광화문광장과 육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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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8년 10월, 서울 세종대로에 지금의 광화문광장이 조성되기 직전이다.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시공현장에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토층이 드러났다. 육조거리는 경복궁이 준공되던 해인 1395년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조성했다.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현재의 광화문 사거리)까지 이르는 거리다. 광화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우측에는 의정부와 이조ㆍ한성부ㆍ호조가 위치하고, 좌측에는 예조ㆍ중추부ㆍ사헌부ㆍ병조ㆍ형조ㆍ공조 및 사역원이 차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육조거리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함께 화재 피해를 입었다가 조선 말 대원군 때 본격 재건됐다. 그러나 구한말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 주요 관공서들이 들어서면서 원래 모습이 사라지고 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실시한 일제의 새로운 행정개편에 따라 육조거리는 광화문통으로 바뀌었다. 1926년 일제는 광화문을 헐고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다. 월대와 육조거리를 없애고 도로를 확장했다.


당시 광화문광장 시공 현장에서 드러난 육조거리 토층에는 시대별 도자기 파편 등을 근거로 아래에서부터 14~15세기 조선건국 시기, 16~18세기 임진왜란 전후, 19~20세기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소중한 600년 도읍의 역사는 지금의 광화문광장 아래에 묻혀버렸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을 새로운 모습으로 재조성한다고 한다. 연말까지 설계를 마무리하고 2020년 1월에 착공해 2021년 5월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 10월부터 4차례 공개토론회를 연 데 이어 12월7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시민 대토론회를 한다.


정해진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월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과 관련한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으로 '깊은 표면: 과거와 미래를 깨우다'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세종문화회관 앞 차로까지 시민광장을 넓히고, 경복궁 앞에 역사광장을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일제강점기 훼손됐던 월대(月臺)를 복원하고 해태상을 제자리로 이동시키며, 사직ㆍ율곡로는 우회하고 일부 구간을 10차로에서 6차로로 축소해 보행중심공간을 조성한다. 광화문부터 동대문까지 지하 보행길을 만들고 GTX-A 노선의 광화문 복합역사가 신설된다.


그런데 이는 지난해 4월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합동으로 발표한 '시민중심 대한민국 대표공간 조성 기본계획'에서 달라진 게 없다. 국제공모전을 왜 했는지 묻는다면 그것 역시 객관성을 담보할 '형식'일 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박 시장이 손에 쥐고 있는 답안지는 2005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승효상 현 국가건축정책위원장과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동으로 제시한 안과 기본 틀이 같다. 오 전 시장은 일명 '승효상 안'으로 불린 이 안 대신 중앙광장 안을 채택해 2009년 7월 현재의 광화문광장을 만들었다. 2011년 당선된 박 시장은 초기부터 광화문광장을 재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2016년 5월 광화문포럼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광화문포럼은 1년 반 가까운 논의를 거쳐 광장 전체를 보행자구역으로 하고 지하에 차도를 만드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서울시는 결국 '승효상 안'을 채택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안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아직은 판단하기가 어렵다. 거대한 보릿자루 같은 세종대왕상이나 나무 한 그루 없이 왕복 10차선 도로로 둘러싸인 지금의 콘크리트 광장이 좋다는 얘기도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국토의 일부를 건드리는 일은 역사를 만드는 엄중한 사안이다. 광화문광장은 600년 도읍지의 역사를 간직하고, 후대에 물려줄 상징공간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치적쌓기용이 되어서는 안된다. 미래지향적 사고로 상상력을 발휘해 광장의 형태를 구상하고, 역사 복원 방식과 교통 처리문제 등 핵심적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충분히 해소한 뒤 해도 늦지 않다. 어차피 우리의 광화문광장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함혜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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