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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과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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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과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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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그 검은 상자를 저와 함께 열어보시겠어요?"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박소담)은 능청스런 문장으로 연교(조여정)를 홀린다. 기정의 캐릭터를 결정적으로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그 중 몇 몇은 아마도 기정에게서 능숙을 연기하는 본인을 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대학 시절 나는 학생이자 과외교사였다. 우습게도 과거에 가장 자신없어 했던 과목들을 중심으로 4년 여 간 10여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동기들이 유럽으로 떠나던 방학에는 수업을 늘리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수업은 한 차례도 끊이지 않았고, 더러는 장기과외를 하거나 형제 자매로 영역을 넓혀가기도 했다.


과외교사로 빨리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정의 방식을 썼기 때문. 과외 경험자는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어머니, 저는 달라요'를 시시때때로 어필하는 것이 핵심이다. 과외 시장에 뛰어드는 학생들의 배경이 어느 정도 평준화 돼 있다고 가정하면, 학생의 점수를 끌어올리는 일은 학부모를 언변으로 제압하는 것 다음의 일이었다.


주기적으로 학부모와 면담을 자처하면서 "냉정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같은 말을 하는 것. 학생의 성적이나 오답 패턴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래프나 표로 만들어서 보여주는 것. 결과적으로 성적이 잘 오르지 않으면 먼저 나서서 생명 연장을 위한 교육방식 변화 운운.

대부분의 학생이 대입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 즈음에는 학원 시스템으로 옮겨갔고, 한 명을 제외하고는 연락이 끊겼다. 과외가 실제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확실한 것은 내 자신이 그 때 체득한 연기력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순탄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검은 상자를 함께 열자며 손을 내미는 것은 기생이나 속임수가 아니라 기술로 취급 받고 있다는 점, 기정과 같은 기술자가 현실에서는 영화와 다른 결말을 맺곤 한다는 점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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