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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양보, 12명 중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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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 앞에 배지 달고 서 있었지만
스마트폰 보거나 잠자는 척

불룩한 배와 임산부 배지는 지하철 승객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가방을 들고 서있는 기자(왼쪽) 바로 앞이 임산부 배려석이고, 그 바닥에 표시도 있다.

불룩한 배와 임산부 배지는 지하철 승객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가방을 들고 서있는 기자(왼쪽) 바로 앞이 임산부 배려석이고, 그 바닥에 표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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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병돈, 차민영 기자] 임신 8개월, 겉으로 보기에 임산부인게 확연히 드러난다. 무게 6.5kg짜리 동대문구 답십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빌린 ‘임산부 체험복’을 착용한 채 서울 지하철 2호선에 올랐다. 보건소에 목적을 이야기하고 배지도 받아왔다. ‘임산부 먼저’라고 쓰여있는 동그란 핑크색 배지는 등에 맨 가방 정중앙에서 반짝였다.


오전 7시 출근시간대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만원이었다. 이날 목격한 자리의 임자 모두 임산부로는 보이지 않았다. 임산부 배려석은 지하철 한칸(1량)에 두 개 있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는 30대 중반께 여성 앞에 섰다. 여성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품이 넉넉한 셔츠 아래 배가 안 보이는걸까, 옷매무새를 만져봤지만 그는 끝내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선 임산부를 눈치채지 못했다. 배를 만져보기도 하고 힘든 표정을 지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은 다양했다. 어떤 중년 남성 한 명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젊은 남성은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고 또 다른 중년 여성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모두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그리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퇴근시간 무렵인 오후 6시께 2호선 지하철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 말을 걸어봤다.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20대 젊은 여성은 “죄송하다”며 벌떡 일어나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기자는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양보해달라’는 말에 모두가 ‘미안하다’고 답하는 건 아닐테니까. 실제 임산부가 교통약자석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임산부 체험을 하면서 폭행을 당하거나 욕설을 듣진 않았다. 그러나 무례한 농담은 악성 댓글처럼 귓가에 잘 꽂혔다. "저거(배지) 있으면 다 앉을 수 있는 거야? 우리도 저거 하나 구해서 달고 다녀볼까." 배지에 뭐라 쓰여 있나 유심히 보던 한 중년 여성이 옆 지인에게 던진 말이다.

이렇게 아침과 저녁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보낸 4시간. 임산부 배려석 앞에 12번을 섰고 1명이 자진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임산부가 지하철 자리를 확보하는 것. 하물며 ‘배려석’을 양보받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날 유일하게 스스로 자리를 내준 사람은 역삼역 인근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었다. 그는 “눈을 마주치니 힘들어보였다. 평소에는 이 자리 잘 앉지도 않는데 길이 멀다보니 앉게 됐다”며 미안한 웃음을 보였다.


임산부 배려석은 아니지만 구석에서 불편하게 서 있는 기자에게 일반석 자리를 양보한 사람도 있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회사에서 마케터로 근무한다는 한 20대 여성은 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사탕 하나를 건넸다. 그는 “몸이 힘들어 보이는데 주변 임산부 배려석이 이미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나라도 양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쌉싸래한 맛을 내는 사탕을 입에 넣은 기자에게 말했다.

2일 지하철 2호선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임산부 배지를 들고 있는 모습. 배지는 인근 보건소나 역에서 산모수첩 등 증빙 서류를 내면 받을 수 있다.

2일 지하철 2호선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임산부 배지를 들고 있는 모습. 배지는 인근 보건소나 역에서 산모수첩 등 증빙 서류를 내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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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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