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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젠더갈등에 침묵하는 아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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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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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재들은 언제까지 제3자인 척하고 있을 셈인가. 한 자리 차지하고 좋은 시절 보낸 뒤 은퇴 후 나올 연금이나 계산하는 아재들. 우리가 만들어놓은 운동장 위에서 아이들이 서로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데 말이다.
젊은 남성들이 역차별을 호소하는 것, 일리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여성들이 또래 남성을 공격하는 건 상대를 잘못 잡은 일이다. 그대들이 증오하는 이른바 '한남충'들은 자신이 살아온 현실에서 어떤 죄스러운 특혜도 누려보지 못했다. 혹은 최소한 특혜가 있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들이 상대적 박탈감이나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은 세대로서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일 아닌가.

반면 여성들이 세상은 불공평하고 위험하다며 머리에 띠 두르고 시위하는 것, 그것 역시 틀렸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먹이가 풍부한 들판에서 동족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지금 남녀가 편을 갈라 심하게 다투는 건 결국 줄어든 파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싸움의 원인은 누가 제공했는가.

어떤 유명인이 말했다. 극단적 혐오와 대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렇게 작금의 젠더 갈등은 철부지들의 감정 싸움으로 치부돼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 아재들이 할 일은 분명해진다. 팔짱 끼고 남 일인 양 훈수만 두면 된다. 때로는 네가 더 잘못했다며 심판 행세라도 하면 어른으로서 할 일 다하는 것 같다. 드센 여자 아이들의 날카로운 칼날이 우리를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우리 아재들에게도 쉽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희들처럼 좌절하지 않았고 불굴의 도전의식으로 헤쳐왔다고 타이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재들이 애써 외면하는 것, 그것은 우리 또래 여성들의 비자발적 희생 아니던가.

그들이 결혼에, 출산에, 육아에 한 명씩 직장에서 사라져가는 모습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열심히 일했고 그렇게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 그들이 '알아서 빠져준' 그 빈자리가 우리의 성공에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온전히 반박할 수 있는 아재, 과연 몇이나 될까. 생계를 홀로 책임져야 했다는 고통으로 항변도 해보지만, 그것 역시 여성들이 스스로 원해 만든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또래 여성들이 그 시절의 보편성에 충실해 말 없이 수긍했을 뿐, 지금의 젠더 갈등은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새로운 사회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아재들이 해결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젊은 남성의 피해의식은 인정해주고 보듬어야 한다. 그들이 여혐 표현으로 또래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지만,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 장본인은 아니다. 한남충이란 비아냥을 들어야 할 본질적 잘못이 그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재들은 여성이 살아가기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노라고 약속하고 또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인이, 학자가, 언론인이 아니어도 우리가 서있는 이 공간에서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희생을 강요 당했던 여성들 그리고 앞으로의 희생 가능성에 불안해 하는 딸들 앞에서, 커다란 파이를 독식했던 세대가 느껴야 할 숙명적 책임감이다.

우리 아재들은 젠더 갈등의 심판도 제3자도 아니다. 당사자이자 원인 제공자다. 극단적 혐오와 대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남자가 했다는 그 무미건조한 관전평은 그래서 매우 실망스럽다.






신범수 사회부장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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