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말해 볼까요
이른 저녁 송도해수욕장에서
난생처음 먹어 보던
파도 거품 같은 투게더 아이스크림
손에 들고 환하게 웃던
처음 보는 파인애플과 노란 바나나
친구네 집 넓은 거실
먼지 앉은 까만 피아노와
커다란 갈색 곰 인형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머리맡
찌든 플라스틱 선물 바구니에서
시들어 가던 시고 달달한 귤 다섯 개
돈주머니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축축하고 황홀한 지폐 냄새
아버지가 다녀간 밤이면
새벽 기도하듯 이불 속에서 흐느끼던
무덤 같은 둥근 등
문신처럼 새겨지는 푸른 멍을 피해
맨발로 담장 아래서 함께 듣던
새벽 세 시의 빗방울 소리
치욕을 잊게 하는 허기와
저녁이면 몰려오는 깊은 잠
그리고
잠들수록 아름다워지는 어제,
■곤혹스러운 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말해 볼까요"라고 적어 놓고선 "치욕"과 그것을 "잊게 하는 허기와" "저녁이면 몰려오는 깊은 잠" 그리고 "잠들수록 아름다워지는 어제"로 시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인이 들려주고자 하는 "비밀"이란, 어떤 과거는 아름다울 수도 있겠지만 모든 과거가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아니 어떤 "어제"는 "문신처럼 새겨지는 푸른 멍"과 같이 참담하고 끔찍할 따름이다. 미화된 과거는 망각으로부터 출현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만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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