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나라 침공 위해 포교 허가...나중엔 일본 전역 기독교인 학살극
기리시탄(막부시대 일본의 기독교 신자) 무리가 온천으로 끌려온다. 데워져 나오는 샘이 너무 뜨거워 지옥으로 불리는 지대. 김이 펄펄 나서 지척도 분간할 수 없다. 잘려 나간 머리들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기리시탄들의 운명이다. 벌거벗은 가슴에 끊는 물이 떨어져도 배교를 거부할 테니. 멀찍이 서서 살육의 현장을 지켜보던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는 무릎을 꿇고 만다. 심경은 편지로 전해진다. "1633년, 하늘 아래 평화. 하지만 이곳에서 저희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부흥할지도 몰랐지만, 지금처럼 박해가 심할 줄도 몰랐습니다. (중략) 이들의 용기는 이곳에 남은 신부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교인들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더욱 굳건해 질 겁니다."
'메이지 유신이 조선에 묻다'는 이 설명을 구체화한다. 메이지유신 전후의 일본 상황을 심층적으로 개괄 정리한 책이다. 우리 역사와의 연관성을 서술하며 올바른 역사를 직시하게 한다. 일본은 한때 가톨릭 포교를 용인했다. '바테렌 추방령'을 내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586년 3월 오사카성에서 예수회 일본 선교 총책임자인 가스파르 코엘료를 접견했다. 그해 5월4일에 예수회의 포교에 대한 허가증을 발급했다. 배경에는 조선과 명나라를 침공하려는 야심이 숨어있었다. 코엘료에게 전투 계획을 털어놓으면서 때가 되면 포르투갈 선박 두 척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코엘료는 찬성했다.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규슈의 기리시탄 다이묘들과의 합동 작전을 제안했다. 권력자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선교를 수월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는 거꾸로 규슈의 기리시탄 다이묘들 사이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도요토미가 파악하게 했다. 그해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진행된 도요토미의 규슈 정벌 또한 예수회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굳히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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