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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진보 vs 보수, 30년 전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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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길 '두 번째 프레임 전쟁이 온다'

[이종길의 가을귀]진보 vs 보수, 30년 전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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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양분해온 낡은 프레임들 종식
사람 중심 경제·한반도 평화시대 맞춰 새로운 세계 열어줄 프레임 제시해야
출범 1년 지난 文정부 아직 한계점 많아...판도 바꿔놓을 획기적인 정책 필요

정치는 '프레임'에서 승패가 좌우된다. 프레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정한 입장을 갖게끔 여러 명제들을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는 내용 구조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여론 지형에 장착되면 다수 사람들의 무의식 세계에 깊숙이 심어진다. 수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프레임을 가동하는 매체나 정치 집단과 입장을 일치시킨다. 정서적 일체감까지 느껴 정치적 지지를 보낸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정치가 프레임 전쟁임을 이론적으로 제시한다. 그 요체는 누가 더 많은 사람들의 뇌 속에 자신의 프레임을 심느냐이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점은 상대 프레임 안에서 싸우는 것이다. 수차례 선방에도 상대 프레임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상대편 지지를 늘리는데 기여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 이슈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함으로써 김대중 정부로부터 이어받은 평화 대 냉전, 개혁 대 수구 프레임을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평화ㆍ개혁 세력이 두 가지 이슈를 두고 분열하고 대립했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틈타 박근혜는 한국사회를 '좌우 프레임'으로 재편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변화된 상황에 맞게 새로이 역동적 양자 프레임을 형성해야 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진보와 보수를 오가는 널뛰기를 반복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흐름이 이어질 경우 한국 사회는 헤어나올 수 없는 혼미 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역사서ㆍ교양서 저술가인 박세길은 저서 '두번째 프레임 전쟁이 온다'에서 임기 초반 현상들을 거론하며 우려를 표한다. 프레임 전쟁에서 불리한 형세를 노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소득 주도 성장론'을 꼽는다. 여러 명제를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는 새로운 프레임이다. 부자와 기업은 증가된 소득 일부만을 소비하고 나머지는 재투자한다. 이때 노동자와 가계는 증가된 소득 대부분을 소비에 지출한다. 노동자와 가계 소득 비중 증가는 소비 지출 확대와 매출 증가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시중 부동자금이 10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소득 주도 성장론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적어도 투자 자금을 빈약하게 만들어 경제성장을 제약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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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노동자와 가계 소득을 어떻게 증가시키는가에 있다. 저자는 "진보 세력 안에 소득 분배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 있다"고 한다. "분배를 정태적 관점에서 단순하게 부자의 소득을 나누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소득 분배는 그러한 과정이 포함되지만 이것만으로는 실제 효과가 크지 않다. (중략) 실질적 소득 분배는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조건에서 성장 과실을 공정하게 나눌 때 이뤄질 수 있다. 파이를 키우면서 나누는 '동태적 분배'가 함께 이뤄질 때 실질적 소득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의 한국 경제 상황은 장기간 지속된 저성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도체 등 일부 분야의 호전으로 통계 수치는 그런대로 좋게 나왔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매출액이 줄어드는 등 바닥을 기고 있었다. 특히 실물경제 동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 가동률은 올해 초 외환위기 뒤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급 능력 부족으로 사용자들이 소득 재분배를 구사할 여력은 크지 않다.
정부 재정에 기댈 수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저자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첫 시험무대였던 최저임금 인상 시도를 예로 든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이행 차원에서 올해 최저임금을 16.9%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최저임금 적용 대상 가운데 상당수가 최저임금 인상을 소화하기 어려운 영세업체라는 데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영세사업자 최저임금 인상을 지원하기 위해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기금을 조성했다. (중략) 정부 재정을 통한 해법은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영세사업자들의 일자리 안정기금 지원 신청은 정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자리 안정기금 신청의 전제 조건인 4대 보험 가입이 추가 부담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이런 흐름은 일자리의 상대적 감소를 야기하기 쉽다. 총량적 관점에서 실질임금 증대를 오히려 상쇄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앞선 이명박ㆍ박근혜 정부가 국가 채무를 크게 늘려놓아 재원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개악저지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대회' 참가자들이 국회 방향으로 향하다 경찰에 저지당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개악저지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대회' 참가자들이 국회 방향으로 향하다 경찰에 저지당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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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매체들은 이런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 소득 주도 성장론을 사실상 무너뜨렸다. 사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별도의 성장 동력 확보 없이 작동 가능한 독립적 성장 전략이 아니다. 관련 정책으로 부분적 효과를 거둘 수는 있어도 온전한 의미에서 경제 회생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는 나름대로 시장 친화적 방향에서 '혁신성장'을 병행 추진했으나 한계가 뚜렷했다. 판도를 바꾸어 놓을 획기적인 방안을 선보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신형 엔진을 장착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 부품만 교체하거나 추가하는 수준이었다"며 "내용에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의식의 밑바탕에서 작동하고 있는 프레임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낡아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하나는 상상력이 고갈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조건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데서 상당한 빈곤을 드러낸다. 진보하고 도약하는 사회는 예외 없이 상상력이 넘쳐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사람들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이 책은 그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진보와 보수로 구분되는 지난 30여 년의 역사에 날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이 흐름을 끊으려면 시대의 전환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새로운 시대를 열 모티브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과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 저자는 역설한다. "새로운 30년은 '진보 시대 30년'이 돼야만 가능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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