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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s] ‘문지’의 소설 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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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시선>, <옆집 아이는 울지 않는다>, <편협의 완성>

◆새의 시선(정찬)=정찬의 여덟 번째 소설집. 표제작인 제25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을 포함하여 단편 일곱 편을 수록하였다. 누구보다 시대의 아픔에 통감하여 그 슬픔의 한가운데로 투신하면서도, 단순히 비감에 젖어드는 손쉬운 길을 경계하고 섬세하게 육화한 소설적 언어로 미학적 성취를 이뤄내는 정찬 소설의 특징이 두드러진 신작이다. 문학평론가 이소연은 이렇게 적엇다.

“정찬은 인간성과 신성을 구성하는 두 축인 ‘윤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고, 깊은 예술혼과 탐색의 열정으로 이들을 혼융시킨다. 그러다 보면 윤리와 미학의 불가능성에 동시에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정찬의 소설은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고, 삶의 진실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다. 그의 소설은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한계 지점 주변을 끊임없이 더듬는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통해 인간이 무한히 신성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가는 이들에게, 참혹한 현실을 꾸준히 아름다움으로 바꿔내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이 책에는 여러 사건이 등장한다. 1986년 김세진·이재호 분신자살 사건, 2009년 용산참사, 1999년 씨랜드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이 외에도 구체적인 사건으로 언급되지 않은 혈육의 갑작스런 실종이나 자동차 사고, 친구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 등이 있다. 정찬은 슬픔의 한복판에 온몸을 던지면서도 감상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들 사이사이 놓인 연결고리에 집중한다. 효율만 찾는 자본주의, 폭력마저 불사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목숨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자, 구조된 자는 가라앉은 자, 사라진 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집요하고도 치열하게 제기되는 이 소설집, 즉 소설가의 질문이다.


◆옆집 아이는 울지 않는다(전아리)=차라리 지옥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잔인하고 강렬한 서사를 중심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의 감정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한편, 고양이를 무는 쥐처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격을 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여덟 편이 실렸다. 절벽 앞 같은 상황에서도 좌절로만 끝내지 않는 강한 마음가짐을 가진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의 삶과 사회의 병폐를 되돌아보게 한다. 평론가 정과리는 전아리의 소설을 설화적으로 구성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도구로 ‘은유적 기법’을 꼽는다. 쪼그라든 눅눅한 영혼을 닮은 물고기의 이미지와 축축한 방 안에 갇힌 청년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어항 속에 갇힌 듯 축 늘어진 젊은이의 삶을 그리거나, 채 익지 않은 살구를 미숙아에 비유하며 젊은 부부에게 닥친 상황을 감각적으로 느껴지도록 한다.

전아리는 사회 곳곳에 도사린 재앙적인 상황을 주변의 소리, 냄새, 사물 등으로 비유한 표현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소설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한다. 직접적으로 말해지지 않는 이야기들, 하지만 상징적인 소리를 통해 익히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을 통해 짐작되는 은밀한 진실. 전아리의 소설들은 이러한 사건 사고가 비단 개인의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의 일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공동체의 경험으로 환원되는 서사는 사회 구성원 스스로 그들이 속한 곳의 문제를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을 시작하기를 촉구하듯, 비밀스럽지만 강력한 외침을 전한다.
“신화는 구성원들이 구축하는 것이며 동시에 구성원들에 의해 각성되어야 할 그들 자신들의 질병이다. 전아리가 사회의 문제를 설화로 부풀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독자가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그 깊이가 가늠되고 그 출구가 희미하게 문의 형상을 구성하는 날이 올 것이다.” (정과리)


◆편협의 완성(이갑수)=이갑수의 첫 소설집. 단편소설 일곱 편과 중편 소설 한 편을 묶었다. 이갑수는 “과학의 방법, 합리적인 체계를 좋아한다. 소설도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어떤 문장을 넣고, 어떤 원리에 따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 나는 문학을 공부하는 과학도이고 싶다”는 사람이다.(문학과사회 2012년 여름호) 그의 관심사는 ‘인간 세계의 작동 원리’에 있다. 마치 수산화나트륨과 염산을 일대일로 섞으면 소금물이 되듯이, A의 상황에서 B의 특성을 가진 인물 C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하여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벌이는 크고 작은 소동들, 괴짜들이 고집하는 낯선 선택들은 이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과 일그러짐의 민낯을 가차 없이 투영해 보여준다.

김신식(산문가, 시각문화 연구자)은 추천사에 “이죽거림 가득한 이치의 문장들에서 추릴 수 있는 속성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편협의 완성’은 환경과 사물의 제 작동을 설명하는 과학적 원리, 그러한 원리를 망각해온 인간이 자신들의 경험치만 담아 제조해버린 이치의 간극을 비평하는 소설집이라고. 이갑수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은 자신이 체득한 이치를 발설할 때 그 이치가 세상의 본맛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본맛이야말로 인간의 자만이 만든 착각이라고. 즉 ‘편협의 완성’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들을 수밖에 없던 기존의 힘 있는 경구를 야유하고, 그 경구에 서린 이치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경구’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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