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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문지’의 시집 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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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숨살이꽃’=시인은 뒤표지 글을 이렇게 썼다. “술배소리는 가거도 어부들의 멸치 잡는 소리이다. 그 가사 중에 “멜치야 갈치야 날 살려라/에야 술배야//너는 죽고 나는 살자/에야 술배야”가 있다. 이 민요를 처음 듣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이 함께 떨려왔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의 몸을 취해야 사는, 먹고사는 일의 엄연함에 새삼 전율하였다. 원래는 어부의 생업인 멸치나 갈치를 잡는 일에서 위의 민요 가사가 나왔겠으나,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모든 먹거리로 확대시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요즘도 밥상머리에 앉으면 술배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때가 있다. ‘너는 죽고 나는 살자’는 소리를 들으며 멸치볶음을 씹으면 소화가 되느냐고 묻는 이 있겠으나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음식 맛에 더 집중하게 된다. 무심코 습관적으로 하는 식사에서 벗어나 돼지고기 한 점, 상추 한 잎, 마늘 한 조각 등의 맛을 각별하게 음미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올 수 없고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나날의 삶을 더욱더 절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출판사 서평의 제목은 “먹고사는 일생의 숙명, 그 소중함에 대한 고백”이다. 아마도 해설일 ‘추천의 말’에서 김종훈은 “최두석은 전형적인 시인보다는 시인-채록자에 가깝다. 내면의 감정만큼 체험의 역사도 중요하다는 듯 그는 직접 발품을 팔아 현실의 반경을 넓히고 그곳에서 만난 이야기와 노래를 시로 구현해왔다. 최두석 시의 발원지를 탐사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넘실대는 개인의 감정에 앞서 둘레 세계에 대한 존중이 있을 것이다. 개별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고 기억을 복원하고 설화의 시간을 잇대놓으며 그의 시 세계는 조용히 확장한다.”고 정리하였다.


◆조은 ‘옆 발자국’=조은의 다섯 번째 시집. 섬세한 시선으로 내면에서부터 길어 올린 생의 빼곡한 비밀들을 들여다보는 시편들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산문과 아름다운 동화의 작가로도 독자들에게 친숙한 조은은 매번 긴 호흡을 들여 신중하지만 꾸준하게 시집을 묶어왔다. 조은 시집을 설명하는 말은 공통적으로 ‘모순’이다. 어둠과 빛, 생과 죽음의 경계에 집중해온 시인에 대해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오생근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조은은 모순의 경계를 살면서도 경계를 위반하거나 초월하는 모순을 감행하지 않고, 위험한 벼랑에서 뛰어내리거나 미끄러지지도 않는다. 그는 가능한 한 모순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디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의 출구를 찾으려고 할 뿐이다. [……] 벼랑과 경계의 글쓰기는 그 어떤 관성이나 타성 혹은 무의미한 반복을 벗어난 시, 삶의 끝이 죽음과 맞물려 있다고 의식하면서도 결국은 죽음이 아닌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혹은 발자국의 시 쓰기이다.” 조은은 그간의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온 ‘생의 아이러니’ ‘존재의 고통’을 자신의 주변부에서 또한 발견하고 공감하는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이 결국 지나온 시간 속 기억과 앞으로 다가올 죽음이 맞닿는 자리에 있다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들여다보며 삶을 더 깊게 이해해가는 여정을 이번 시집에 담았다.


◆정한아 ‘울프 노트’=론 울프(lone wolf). 직역하면 외로운 늑대이지만, 단독 범행자 혹은 고립주의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한아 시에서 울프 씨는 세계의 문제를 거창하게 부풀릴 줄 모르고, 또한 불의와 타협할 줄을 몰라서 태생적으로 불화한다. 그의 노트는 루머로서만 존재하며, 종종 거짓과 추문으로 몰리곤 한다. 하지만 부적응과 자기 폐쇄로 사회와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이 울프 씨야말로 세상의 ‘명쾌’와 ‘간편’의 대척점에 서서 세계를 똑바로 반성하게끔 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정한아는 간파한다. 이 부정성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분투할 울프 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결국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시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천박과 악다구니로 가득한 세속의 것들을 질료로 삼아 시를 쓰고 세계를 느끼는 것. 정한아는 히스테릭할 정도로 반성과 경계를 집요하게 촉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국 땅에 발붙인 속된 것들만이 가질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사랑한 울프 씨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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