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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다음 생을 보았다/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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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저녁 울주배를 가로로 싹둑 두 동강 낸 아내의 환호성, 야호 배의 다음 생을 보았다! 껍질 깎을 땐 보지 못한, 은밀하게 보여 주는 배의 씨와 씨방 신기한 듯 보며.


■생명체가 영생과 번식 가운데 왜 번식을 선택했는지 혹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서는 생무지인 내가 조리 있게 설명할 도리는 없다. 그건 그러한데 다만 시를 가까이 하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아무래도 영생보다는 번식이 더 흥미롭다. 생각해 보라. 모두가 영원 불사한다면 생은 얼마나 따분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 생에 대한 의지 자체가 생겨날 리 없지 않은가. 따라서 영생은 차라리 무(無)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도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에 비해 번식은 생에 죽음을 직접 도입한다. 그리고 그러함으로써 오히려 생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번식은 우리를 필멸로 이끌되 다음 생을 예비하고 추동하도록 자극한다. 스스로를 소멸시켜 가면서 유전자를 갱신해 가는 번식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미 숭고 그 자체다. 어쩌면 번식은 죽음이라는 절대 무한과 불가지의 영역을 내장한 영생의 향상된 판본인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불가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생과 사를 이어 맞물려 우리의 보잘것없는 나날들을 무량의 차원에서 돌아보게 만든 건 분명하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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