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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어떤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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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맘충 안되기 노하우 공유해주세요~". 육아중인 엄마들이 주로 활동하는 한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 며칠 전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보자마자 어쩐지 울컥한 기분이 든다. 이토록 애쓰는 표정의 문장이라니.

맘충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으로 기억한다. 아이를 키우다 복직한 해였기에 이 표현은 꽤 인상깊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주위를 더 살피고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순기능(?)이 있었다. 육아의 짐을 유독 '엄마'에게만 지운데다가 벌레(蟲)에까지 빗댄 표현은 못내 찝찝했지만.
그런데 끝이 나지 않는다. 오직 본인의 편의만 중요한 이기적이고 예의없는 부모들의 행동이, 그런 이들을 '벌레'라고 부르는 일이, 문제 행동이 글로 옮겨져 SNS를 장악하는 경우가. 레퍼토리는 어쩌면 그렇게 뻔한지. 커피숍 테이블 위에 두고간 똥 기저귀, 어린아이가 깨트린 가게 물품, 기내에서 그칠 줄 모르고 우는 아이, 문제를 지적하면 도리어 화를 내는 부모의 뻔뻔함이 사연 속에서 돌고 돈다. 일부 언론은 포르노처럼 더 자극적인 사연들을 끌고 들어와 싸움을 붙이고 댓글장사를 한다. 그러는 3년 동안 상황이 바뀌거나 좋아진 것은 딱히 없어 보인다.

그 와중에 '노하우'를 묻는 이 초보 엄마의 SOS는 새삼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는 글 말미에 "아이디어 모아서 10가지 꿀팁 같은것을 만들자" 라고도 적었다. 그 순진무구한 부탁에 사람들은 댓글로 본인의 방법을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식당에 아이 줄 음식을 요청하는 대신 주먹밥이며 밥전을 준비해 다니고 식사 후에는 바닥을 물티슈로 싹싹 닦으라는 솔선수범형 조언부터, 국 담은 보온병이나 비닐장갑을 챙기라는 아이템형 제안, 아이가 통제되기 전 까지는 아예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인내형 충고까지.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지만 맘충이라는 키워드를 둘러싸고 봤던 수많은 문장 가운데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해결방법을 궁리한 첫 사례로 나는 기억한다. 육아란 게 그렇게까지 조심할 일인가 우려되는 부분도 있으나, 벌레 들먹여 가며 손가락질하고 '늬들도 키워보라'는 논리로 반박하는 것 보다는 건설적인 분위기로 느껴졌다.

맘충 스토리가 공분을 먹고 사는 '썰'로 소비되는 사이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아이를 잘 키워보려는 부모들은 침잠한다. 내 얘기도 아니건만 누군가의 일갈에 움츠러든다. 지난달 소설가 박민규가 한 언론사 칼럼(기레기 울어예는)에 적었던 문장이 떠올라 일부 단어를 바꿔 그를 인용해 본다. "맘충이란 말에 상처받을 맘충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오직 '엄마'들만이 맘충이란 말에 상처받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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