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 詩]상경 전야/이준희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자리에 누운 상경 전야
방문 틈새로 한기가 스미고
연탄가스는 잘 단속했을까?
일어나 부엌문을 비집어 열어 넣고 다시 눕는다.
어둠 속에서 더욱 또렷해져 오는 방 안
아버지의 앓는 소리
호떡을 굽고 들어와 누운 어머니의 곤한 숨소리
귓바퀴를 찌르는 시계 초침 소리
잠이 오지 않는다.
새벽이 오면 길을 떠나야 할 텐데…
아버지와 어머니께 뭐라 말할까?
쓰레트 지붕을 때리며 겨울바람은 돌고
어쩌면 다시 못 볼 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을까…
내 가슴 평생 응어리질 말.
아버지 몸조리 잘 하이소
지 걱정 말고예.
눈물은 베갯잇을 적시는데
상경의 새벽은 가까워 와
아버지를 꼭 끌어안는다.


■이 시는 26년 전 그러니까 1992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시를 쓴 사람은 그때 대학생이었고, 휴학 중이었고, 수배를 받고 있었다. 그땐 그랬다. 그 시절 조국 통일을 꿈꾸던 청년은 자신의 꽃다운 청춘을 차라리 잊어야 했다. 사랑하는 이와도 불현듯 헤어져야 했고, 가족에게 "평생 응어리질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한 채 집 앞 골목길에서 돌아서야 했다. 그랬다. 26년 전엔 그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불과 이태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에 떨곤 했었다. 26년 전의 시를 새삼스레 꺼내 다시 읽는 까닭은 단 하나다. 오늘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다. 제발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길 바랄 뿐이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