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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막의 여제 우리 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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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배우 최은희가 영화 같은 삶을 뒤로 하고 영면에 들었다. 일생의 동반자이자 영화 동지인 남편 신상옥 감독을 다시 만나 안식을 찾게 됐다.
19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발인식은 고인의 생전 뜻대로 소박하게 진행됐다. 아들인 신정균 감독 등 유족과 원로 영화인 100여 명이 장례미사를 봉헌하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미사를 집전한 조욱현 토마스 신부는 "일생이라는 하나의 작품이 이제 죽음을 통해 출품된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하느님이 선생님의 아름다운 작품을 크게 칭찬하고 큰 상으로 보답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조 신부는 성라자로마을을 후원하며 한센인들을 도운 고인의 선행과 겸손함도 언급했다. 최은희는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일했던 1970년대 초반 영화계 인사들에게 성라자로마을을 알리며 후원을 당부했다. 학생들과 함께 시설을 찾아가 위문공연도 했다. 조 신부는 "후원을 당연한 일이라 말씀하셨다. 이 조촐하고 가난한 장례식도 그 분의 겸손을 드러내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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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과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원로배우 신영균·신성일·문희·한지일 등은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했다. 각막 기증으로 마지막까지 헌신한 고인은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에 있는 고 신상옥 감독 곁에 묻혔다.

최은희는 지난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2006년 신상옥 감독을 떠나보낸 뒤 건강이 악화됐다. 최근까지 일주일에 세 차례 신장 투석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은막의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연극 무대를 누비다가 1947년 '새로운 맹세'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밤의 태양(1948년)', '마음의 고향(1949년)' 등을 찍으며 김지미ㆍ엄앵란과 함께 1950∼19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그녀는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신상옥 감독을 만나 결혼한 뒤 많은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꿈(1955년)', 지옥화, '춘희(1959년)', '로맨스 빠빠(1960년)', 백사부인, '성춘향(1961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다. 글래머이면서도 가냘픈 자태와 수줍은 표정으로 요조숙녀에서 요화, 현모양처에서 여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1976년까지 130여 편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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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근대화와 발전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여성을 연기해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미모나 연기력도 출중했지만 좌중을 압도하고 스크린을 장악하는 프로파간다의 얼굴이 있었다. 1978년 홍콩에서 그녀가 납북된 사건은 그런 흡입력을 북쪽의 권력도 흠모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북에서 다시 만난 신상옥 감독과 함께 탈출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탈출기(1984년)' 등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에서도 그녀 특유의 에너지가 분출되었다.

고인은 1986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북한 영화인 자격으로 참가한 것을 기회로 귀국길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대사관으로 탈출했다. 한국 현대사의 가시덤불을 온몸으로 헤치면서도 자신의 생애를 아름답고 품격 있게 지켜냈다. 영화를 향한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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