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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낙규의 Defence Club]방위비분담금 마찰 '제 2의 닉슨 독트린' 이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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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낙규의 Defence Club]방위비분담금 마찰 '제 2의 닉슨 독트린' 이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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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한미 간에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 고위급회의가 진행되면서 미국 트럼프대통령이 내민 '한미동맹 청구서'가 과다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주한미군 철수논란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협상에서 우리측이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거부할 경우 미국내에서 먼저 주한미군축소나 철수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 '제 2의 닉슨 독트린'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 우방국들은 스스로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SCM 4차 회의를 개최한 1971년에 7사단 병력중 2만명을 철수시켰다. 이후 2사단 병력 3400명을 추가로 감축했다.


우리 정부는 반발했다. 당시 최규하 외교부 장관은 1970년 6월25일 주미대사에 보낸 전문에서 "주한미군 감축설이 계속 유포됨은 북괴의 계략에 힘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민에게 큰 실망과 불안을 안겨주는 결과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7년후인 1978년에는 미 본토에서도 주한미군 감축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이 북한의 지상군 전투력이 한국군보다 우세하다는 보도를 연이어 쏟아낸 것이다. 미의회는 '철군계획중지'를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권고는 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1978년 10월15일에는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고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주한미군 감축계획은 완전히 폐기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의 당권을 장악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라고 불리는 개혁ㆍ개방을 추진한 것이다. 이 정책으로 미의회는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됐다고 판단하고 국방비 축소를 주장했다.


이때 생겨난 법안이 샘 넌 민주당 상원의원과 존 워너 공화당 상원의원 등 미 의회 의원 13명이 제출한 일명 '넌-워너'법안이다. 이 법안에 압박을 받은 H. W 부시 대통령은 1990년 4월19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미군의 감축 계획을 담은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I) 문서를 의회에 제출하고 한미연합방위태세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한다.


발표에는 1992년까지 적용할 1단계, 1995년까지 2단계, 1996년 이후에 3단계 등 단계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안을 담았다. 1992년까지 육군 5000명과 공군 2000명 등 총 7000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1995년까지 6500명의 주한 미 육군병력과 공군병력을 추가로 줄이며, 1996년 이후에는 최소한의 미군만 주둔시킨다는 것이다.


한미 합참의장은 1990년 11월에 열린 한미 군사위원회회의(MCM)에서 지상군 5000명과 공군 1987명 등 총 6987명의 주한미군을 1992년까지 줄이기로 합의했다. 1단계는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2ㆍ3단계 방안의 대부분은 유보됐다. 1990년대 초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조짐 때문이었다.


주한미군 철수논란은 2014년에도 불거졌다. 당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이 대화로 돌아와 이 (비핵화) 과정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이 지역 내 미군 수요를 줄이는 과정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폭탄발언이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다음날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진압에 나섰다. 헤이글 장관은 제46차 한미안보회의(SCM) 직후 한민구 국방장관과 함께 진행한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군의 병력 배치와 관련 정책을 변경할 의도가 없고 한국(주한미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주한미군 감축을 일축했다. 주한미군에 대한 논란은 주한미군이 한국에 처음 주둔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핵개발을 시도함에 따라 동아시아 전략구상의 나머지 부분을 유보하기로 합의했다. 1994년 북핵위기가 본격화되자 다음해인 1995년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보고서(EASR)를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주한미군 병력은 3만여명의 수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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