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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전집 자서(自敍)/정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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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을 벗을 때마다 내 몸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밖의 몸이 안의 몸으로 어떻게 들어서는가 오늘 하루 그렇게 나는 몇 번이나 바뀌었는가 어떻게 허락받았는가 모든 창들은 여닫기는 동안 바람 한 줄기를 구름 한 장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모든 것들의 결과 틈이 궁금하다 팔질이 되기 전에 비행기와 배를 타고 이 몸을 내보내고 들여놓고 싶다 나가면 이승이 저승이 되고 저승이 이승이 되는 결과 틈이 생길까 궁금하다 나의 맨발이 짚고 지나는 곡선이 그려진 전집 속의 한 권을 보태고 싶다 권별로 꽂아 놓고 싶다 아마 너에 대한 전집이 첫 권으로 꽂혀 있을 것이다 너를 드나든 이승과 저승이 따로 있을 것이다

[오후 한 詩]전집 자서(自敍)/정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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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의 시를 뒤늦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고 문득 사무쳐서 잠시 바깥을 나돌다 왔습니다. 현관을 들어서 신발을 벗으려는데 차마 벗기가 어려웠습니다. 지난여름 이 신발을 신고 선생님을 뵈러 가던 길이 생각나서였습니다. 그래서 쭈그리고 앉아 잠시 신발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래 신어 곳곳이 쭈글쭈글하고 때가 낀 운동화를 보고 있자니 괜히 서러웠습니다. 서러워서 한참을 털썩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있자니 해는 곧 다 저물고 아파트 현관은 저 베란다 바깥보다 어두워져 그만 여기가 정말 이승일까 싶어 겁이 나기까지 했습니다. 사무치다 그립다가 서럽다가 두려웠습니다. "이승이 저승이 되고 저승이 이승이 되는 결과 틈"이라니요, 선생님. 전 아직 그런 경지는 짐작도 못 합니다. 다만 어둠 속에다가 신발을 내동댕이치고 방 안에 들어와 숨만 고르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어둠이 신고 있을, 아니, 우두커니 어둠을 신고 있을 신발 따위야 나 몰라라 하고 말입니다. (정진규 시인은 지난 9월 28일 팔순을 한 해 앞두고 영면하였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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