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넬스를 차나칼레(Canakkale)라고 부름은, 산토리니를 티라라고 부를 때의 마음가짐에서 비롯한다. 그리스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들의 섬을 이탈리아 식으로 부르기를 꺼린다. 2004년 아테네 공항에는 산토리니로 가는 비행기가 없었다. 티라 행 뿐. 또한 다르다넬스가 차나칼레라면 겔리볼루(Gelibolu) 가 갈리폴리(Gallipoli)보다 앞섬은 당연한 일이다.
역사를 살피면 언제나 침략자가 차나칼레 보아스를 건넜음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런데 1915년 영국의 풋내기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은 이곳에 군대를 상륙시키려 했다. 성공했다면 지중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물길을 장악해 독일과 오스만 동맹의 허리춤을 움켜쥐고 동맹국인 러시아와 통할 수 있었다.
늙은 제국 오스만의 숨이 멎어가던 시절. 처칠은 자신만만했고 계획은 웅대했다. 세계최강의 영국 전함을 동원, 함포사격으로 오스만군의 해안포대를 초토화한 다음 지상군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처칠이 상상한 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오스만 병사들의 투혼이 초인적이었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1915년 2월 19일과 25일, 3월 25일에 포화를 퍼부었으나 오스만 포병의 반격으로 전함 세 척을 잃었고 세 척은 대파됐다.
이 영화들은 호주 젊은이들의 죽음을 꽃잎이 지는 듯 애잔하고도 아름답게, 아니면 사뭇 비극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훈련이 충분하지 않은 젊은 병사들이 무작정 돌격하려다 떼죽음을 당한, 철저히 실패한 작전이었을 뿐이다. 지휘관들은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했다. 또한 호주군도 뉴질랜드군도 영연방의 군대로서 침략군이었다. 당시 이들 젊은이들 사이에는 입대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스만의 젊은이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겔리볼루를 지켜냈다.
이 영화들의 반대편에서 겔리볼루 전역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터키에서 만들었다. '갈리폴리: 최악의 상륙작전'(2012), '차나칼레 욜룬 소누'(2013), '갈리폴리 상륙작전'(2015) 등이다. 우리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을 떠올리게 만드는, 터키인들의 애국심이 철철 넘치는 영화들이다. 모두 동영상을 빌리거나 사서 볼 수 있고, 스토리는 뻔해도 영상이 아름다워 시간이 아깝지 않다.
에게해에서 이스탄불을 향해 차나칼레 보아스를 항해하다 보면 해안에 새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멈추어라 나그네여! 그대가 알지 못하고 와서 머무르는 이 땅은 한 시대가 가라앉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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