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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s] '대위의 딸'과 '부유하는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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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베이비붐 세대나 그 전 세대의 남성에게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누구냐고 물으면 금방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라는 시는 대번에 기억할 것이다. 이 시는 1960~1970년대 동네 이발소에 걸린 액자 속에서 하이칼라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는 사나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싯귀는 번득이는 금빛이나 아주 장식적인 흰 글씨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 분홍색 돼지나 멀리 눈 쌓인 산 아래 물레방아 돌아가는 ‘고향 마을’을 배경삼아 세로로 흘러내려갔다. 그 시의 주인이 푸시킨이다.

푸시킨은 이발소나 물방앗간, 돼지농장의 주인이 아니라 러시아의 국민 시인·소설가다. 그는 자신을 모욕한 프랑스인 귀족과 결투를 벌이다 서른여덟 나이에 총상으로 요절하기까지 시, 희곡,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걸쳐 다채로운 문학 세계를 열었다. 러시아 시문학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운문 형식에 한계를 느끼고 산문을 쓰기 시작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완성한 장편소설이 <대위의 딸>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 리얼리즘 산문 전통의 효시가 되었다. 그의 뒤를 이은 고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이 모두 푸시킨을 위대한 작가이자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손꼽았다.
『대위의 딸』은 외견상 신임 청년 장교의 성장과 모험, 사랑과 결실이라는 큰기를 따르지만 내면에는 허세와 비리에 물든 러시아 귀족사회에 대한 야유와 능력 없고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장성들과 허술한 군 체계에 대한 비판하고 민중봉기의 수장 푸가초프의 인격과 카리스마를 여제 예카테리나 2세와 동일한 수준에 올려놓는 등 당시로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감추어 두었다. 유쾌한 필치와 애틋한 사랑 이야기 속에 부패한 러시아를 향한 날선 비판을 숨겨 놓은 푸시킨의 솜씨는 억압적인 독재 권력 아래 작가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저항의 방식을 드러냈다.

출판사에서는 책의 띠지에 큰 글자로 ‘가장 위험한 시인의 가장 위험한 정치소설’, 작은 글자로 ‘유시민이 극찬한 러시아 소설의 전형’이라고 인쇄했다. 노무현 정권 때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한 유시민이 '청춘의 독서'라는 책에서 이 소설을 소개하면서 단순한 애정 소설이 아니라 연애 소설로 위장한 역사소설이자 정치소설이라고 평가하였는데 이 정도면 극찬은 극찬이다. 이 띠지가 책 판매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지음/이영의 옮김/새움/1만2800원>

◆부유하는 혼=일본 도쿄, 식당에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시어머니에게 모두 빼앗기는 란코는 하루 일이 끝나도 집에 가면 또다시 집안일을 해야 한다. 유명한 작가였던 란코의 어머니는 딸을 버리고 한국으로 떠났지만 란코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무능한 남편과 쌀쌀맞은 시부모 사이에서 아이를 지켜내기 위한 란코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어느 날, 이런 생활을 더 이상은 이어나갈 수 없다고 결심한 란코는 영적인 기운이 자신을 도울 거라 믿고 시어머니 방 앞에서 부적을 태우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어머니를 피해 아이만 데리고 집을 나간다.
이 소설은 ‘대문 없는 집’인 사람의 몸을 들고 나는 저쪽의 존재와 이쪽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떠나버린 엄마를 잊지 못하고 엄마처럼 소설가가 되려는 일본의 딸, 그리고 이제는 옛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은 치매 엄마를 모시고 사는 한국의 딸이 이야기의 두 축이다. 이와 함께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영적인 능력자에게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배운 여자가 자신의 몸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것이 두 축을 연결한다. 아내를 찾으려는 남편의 집요한 추격, 왜 추격당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자매의 피폐해진 삶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다. 재미있는 책. <황희 지음/해냄/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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