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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슬픔을 견디는 방식/강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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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깍지를 끼고 있는 손이 내 손 같지 않다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고개를 숙인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의 목을 조른다
 왼손은 오른손에게
 오른손은 왼손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난 네 손이 아니란다
 넌 내 손이 아니란다

 깍지를 끼고 있는 손이 내 손 같지 않을 때
 깍지를 더 꼭 끼어 본다
 울고 있는 왼손과
 울음을 참고 있는 오른손이 만나
 슬픔을 옥죈다

 뼈가 뼈가 아닐 때까지
 두 개의 다른 살이 하나로 뭉개질 때까지
 두 개의 손이 두 개가 아닐 때까지
 한숨이 두 개의 손을 갈라놓을 때까지
 장례식장 외진 구석
 상복 입은 긴 머리 소녀가 사발면을 먹고 있다
 면발을 입에 물고 힐끗 돌아본다
 난 귀신이 된 것 같았다

■어떤 슬픔은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헤어 나올 수도 떠나보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육친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비록 미리 짐작하고 그래서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 하더라도 늘 급작스럽고 황망할 따름이다. 시인에게도 아마 그런 큰 슬픔이 닥쳤었나 보다. "뼈가 뼈가 아닐 때까지/두 개의 다른 살이 하나로 뭉개질 때까지/두 개의 손이 두 개가 아닐 때까지/한숨이 두 개의 손을 갈라놓을 때까지" "슬픔을 옥죈다"니 말이다. 뭐라 이를 말이 없는 이 커다랗고 지독한 슬픔을 어찌해야 할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저 마지막 연에 적힌 장면을 들어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토닥이고 싶지 않다. 물론 그 또한 "슬픔을 견디"고 나누는 방식이겠지만, 정녕 건널 수 없는 슬픔이라면 차라리 스스로 귀신이 될지언정 그 슬픔을 통째로 다 겪어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덧붙이자면 그래서 애도는 언제나 불충분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애도는 기필코 완결되어야 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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