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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내 손이 내 가족이다/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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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잇적엔 밤늦도록 뚝방에 모여
별자리를 찾으며 별 얘기를 하다가
마을의 불빛을 헤아리곤 했지
불빛으로 집집을 알아맞혔지
불빛으로 촛불 호롱불 남포등을 가려냈다
불빛 얘기는 별 얘기보다 쉽고 정다웠다

눈앞을 지나가는 개똥벌레 반딧불이에서
건널목에 띄엄띄엄 푸른 도깨비 불빛
제사상 봐서 돌아오는 빠끔 담배 불빛
앞뒤로 줄 서고 어깨동무한 이웃집들 불빛
저 혼자의 외로운 외딴집 불빛
주막집의 수박등 상갓집의 조등과 모닥불까지
지금도 불빛은 기다림의 대명사
퇴근 늦은 가장을 수험생 자식을
기다리는 가족은
밖에서 더 잘 보이는 불빛이지
불빛 화안히 밝혀 놓은 가족이 있어
집이란 한 글자는 얼마나 포근하고 따스한가

늦지도 않은 오늘도 겨울 초저녁
깜깜한 집을 들어와 더듬어 불을 켜는
나의 오른손
을, 기다려 줘서 고맙다는 듯 쓰다듬는 왼손
혼자 살면 사람도 자웅동체 되나 봐.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생각할수록 짠해지는 이야기. 학교 앞에서 혼자 자취하던 예쁜 후배가 문득 했던 이야기. 낮에도 빈방 가득 형광등을 켜 둔다는 좀 생뚱맞은 이야기.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무슨 뜻인지 깨달았던 이야기.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 자꾸자꾸 토닥이고 싶은 이야기. 그런데 이 얘기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이야기. 그것도 아주 흔하디흔한 이야기. 오히려 그래서 다만 혼자서 참고만 있는 이야기. 매일매일 끅끅거리면서 겨우겨우 참는 이야기. 참으면서 중얼중얼 "혼자 살면 사람도 자웅동체 되나 봐." 싱겁게도 눈물만 펑펑 나는 이야기. 누구든 좋다. 외로우면 연락하련. 내가 네 왼손이 되어 줄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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