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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헤라클레스가 짊어진 하늘

최종수정 2016.11.19 11:07 기사입력 2016.11.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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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여름휴가를 10월에야 다녀왔다. 비스바덴에서 사흘, 골링에서 닷새를 보냈다. 골링은 잘츠부르크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국도를 달리면 나온다. 알프스 북쪽에 있어 주변에 숲과 호수가 많다. 자전거를 타거나 등반을 해도 좋은 곳이다. 10월 12일. 쾨니히스제라는 호수를 배로 건너 잔트 바르톨로매 순례자 성당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호수에서 잡은 송어와 호밀빵. 그리고 잠시 옛 주인의 영지를 둘러보다가 헤라클레스상(像)을 발견했다. 등신대(等身大)의 헤라클레스가 올리브 몽둥이로 카쿠스의 머리를 박살내기 직전이다.

 카쿠스는 헤라클레스의 소떼를 훔쳤다가 다진 고기 꼴이 된다. 소떼는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12과업 중 하나로, 메두사의 손자 게리온에게서 훔친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업적은 대개 살육과 도둑질이다. 12과업도 그렇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남편이 바람 피워 낳은 아들 헤라클레스의 신세를 버려놓을 작정으로 내린 것이다. 헤라클레스가 카쿠스 죽이는 장면을 여러 예술가들이 작품으로 남겼다. 유명하기로는 피렌체의 피아차 델라 시뇨리아에 있는 바르톨로메오 반디넬리의 조각이 손꼽힌다.

 헤라클레스는 유럽 어디에 가든 있다. 한마디로 슈퍼스타다. (사실 진짜 스타는 제우스다. 여신들은 물론 인간 중에서도 괜찮다는 처자는 모조리 유혹해서 줄줄이 자식을 낳지 않았는가. '올림포스의 돈 조반니'. 그 후손들이 이리저리 사랑해서 자손을 퍼뜨리는 통에 신과 인간 세계의 혈통이 뒤죽박죽됐다. 현대의 인간 세상이 이토록 엉망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몽둥이를 든 헤라클레스의 오른쪽 어깨 근육이 부풀어 터질 듯하다. 그는 근섬유가 생생히 살아 있는 그 어깨에 하늘(곧 우주)을 올려놓은 적도 있다.

 헤라클레스는 12과업의 하나로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따야 했다. 사과는 요정 헤스페리데스와 머리가 100개나 되는 뱀 라돈이 지켰다. 헤라클레스는 코카서스 바위산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를 풀어주고 그로부터 아틀라스에게 부탁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아틀라스는 거인족이 제우스와 싸울 때 거인족 편을 든 죄로 하늘을 양어깨로 짊어지는 형벌을 받았다. 헤라클레스는 하늘을 대신 짊어지고 아틀라스에게 사과를 따오게 했다. 아틀라스는 사과를 가져왔으나 헤라클레스를 만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계속 짊어지고 있게." 헤라클레스는 알았다고 했다. 대신 자세를 바로잡게 딱 한번만 더 들어 달라고 했다. 아틀라스가 깜빡 속아 하늘을 넘겨받자 헤라클레스는 그 길로 사과를 챙겨 미케네로 줄행랑쳤다. 그 뒤 아틀라스 대신 누군가 하늘을 짊어졌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한두 영웅이 하늘을 떠받친다고 믿은 고대인들은 참으로 순수했다. 아니면 정말 그런 시대였을까. 순수의 시대는 갔다. 그런데도 아직 혼자 힘으로 세상을 떠받친다고 믿는 천치가 있다. 아니,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런 척 속인다. 내장에 들러붙은 굳기름을 있지도 않은 자식에게 대물림하려는 자들처럼 미련하다. 들어라. 시대를 짊어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저 웅크린 어깨, 그 품이 지켜내는 촛불과 같이 꺼지지 않는 정의와 휴머니즘, 곧 하늘의 '마음'이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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