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은 두 사람의 격정적인 정사가 끝나고 나서야 여주인공
보라가 지금 사랑을 나눈 상대 일범은 남편(최민식)이 아닌 다른 남자(주진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영화 해피 엔드의 충격적인 오프닝 신이다.'(조원희) 충격은 개인의 경험이다. 나는 '접속'이나 '내 마음의 풍금'에 나온 전도연 밖에 몰랐기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된 뒤 30분이 지나도록 붕 뜬 느낌이었다. 오티스 레딩의 노래(These Arms of Mine)가 흐를 때, 겨우 영화의 흐름에 몸을 섞었다. 조원희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가장 충실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두 번째 러브신을 시작하기 전 침대에 누워 천정에 영사되는 아프리카 얼룩말을 보는 장면"이라고 썼다. 이 때 레딩의 노래가 나온다.
"외로운 나의 두 팔이 그대를 갈망해요. 그대를 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 팔이 접혀 가슴을 덮을 때 가장 편안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품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신이 인간을 창조해 두 팔을 달아주고 제 몸을 향해 굽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포옹함으로써 포용하기를 원했을까. 신이 인간에게 내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는 명령은 '포용의 명령'이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이 명령을 받은 인간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신은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린 다음 노아에게 '살아 움직이는 모든 짐승'을 먹이로 허락한다. 그러자 카인의 후예는 포용을 소유와 독점, 욕망과 잔혹으로 대체했다.
파라오는 왕홀(王笏)을 움켜쥔 채 두 팔을 접어 가슴 위에 포갠 자세로 관뚜껑에 허깨비가 되어 누워 있다. 미라가 된 파라오의 팔이 안으로 굽어 욕망과 권력과 죽음이 되었다. 저주로다. 이 저주는 지상에 내려온 신의 아들이 두 팔을 벌린 채 숨을 거둘 때까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주가 얼마나 강한지 예수가 죽은 뒤로도 그저 가능성만 슬쩍 보여줄 뿐이다. 그 무엇도 해방을 보증하지 못한다. 하지만 저주와 해방은 팔오금과 팔꿈치처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여기 희망 한 모금이 남았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