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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내 어깨 위 고양이

최종수정 2020.02.11 15:24 기사입력 2016.11.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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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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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기울어 빛이 그늘을 만나는 경계에 황금빛이 감돈다. 고양이들이 현관 앞 이끼에 뒤덮인 시멘트 계단에 아무렇게나 널어 둔 솜뭉치처럼 몸을 늘어뜨린 채 이따금 뒤챈다. 내가 사는 골목에는 고양이가 대여섯 마리 산다. 내 아들이 갖다 바치는 사료를 주식으로 삼고 가끔 내가 내다 놓는 생선 부스러기를 별미로 즐기며 조용히 성장하거나 늙어가고 있다. 아들은 소년가장처럼 고양이들을 부양한다. 녀석이 대학에 나가 강의하고 받은 돈을 가지고 제일 먼저 제 여자 친구에게 점심을 사주는지, 고양이 먹이를 사는지 나는 모른다.

아들은 고양이를 직접 보기 전에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를 간직했을 것이다. 나는 대학생일 때 잡지와 단행본을 내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화책을 만들 때 가장 즐거웠다. 책이 나오면 한 권씩 챙겨 집으로 가져왔다. 나중에 아들이 글자를 깨우친 다음 그 책을 거의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어서 나를 기쁘게 했다. 그 중에 번역동화 '장화 신은 고양이'가 있다. 프랑스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169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아들은 책을 읽어 나가다가 대화 부분이 나오면 등장인물이 되어 실감나게 감정을 넣어 가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혼쭐이 날 줄 아시오!"하고 호통을 쳤다. 방앗간 주인의 세 아들이 재산을 나눠 받는다. 첫째는 방앗간, 둘째는 당나귀, 막내에게는 고양이 한 마리. 형들에게 쫓겨난 막내가 신세를 한탄하자, 고양이는 그에게 "가방과 장화 한 켤레를 주면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막내는 고양이에게 가방과 장화를 주고, 고양이는 약속을 지킨다.
세상이 살만한 곳인 이유는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현실 속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제임스 보웬은 런던에 흔한 노숙자다. 부서진 기타 하나를 들고 길거리에서 먹고 자며 마약을 사기 위해서라면 도둑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가 2007년 초록색 눈을 반짝이는 길고양이 '밥'을 만난다. 밥에게는 상처가 있었고, 보웬은 없는 돈을 털어 치료해준다. 그러는 동안 밥과 정이 든 보웬은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며 거리연주를 한다. 고양이 덕에 청중은 더 많은 돈을 내놓는다. 보웬은 자신이 아파서 밥을 돌보지 못하고 떠날까봐 걱정한다. 밥에 대한 사랑은 보웬으로 하여금 마약을 끊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보웬은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며 자립한다. '내 어깨 위 고양이 Bob(A Street Cat Named Bob)'을 출간했다. 책은 놀랍게도 조앤 롤링의 책을 제치고 베스트셀러가 된다. 보웬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러나 요즘도 밥을 데리고 거리에 나가 일주일에 두 번씩 기타 연주를 한다.

책의 표지를 장식한 사진 속에서 밥이 보웬의 어깨에 앉아 있다. 뭔가 주문을 걸려는 듯 뚫어지게 이쪽을 바라보는 밥의 눈빛이 신비롭다. 참 편안해 보인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본 일이 있는가? 파도가 높은 황해를 통통배를 타고 건널 때, 작고 동그란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파도가 높건 비가 오건 세상모르고 잠에 취한 젊은 날의 오후가 나에게는 있었다. 앞으로 몇 번, 밥이 앉아 있는 저 어깨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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