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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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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희 개인전 내달 23일까지 OCI미술관
사회적 메시지 영상 드로잉 작품 한자리

정석희 작가 [사진=OCI미술관 제공]

정석희 작가 [사진=OCI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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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중견작가 정석희(52)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전시장 한 쪽에는 작품별로 그 제작과정을 담은 책을 여러 권 비치해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순간순간 삶의 궤적을 담았다고 한다.

정 작가는 빈 캔버스 앞에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작업한다. 작품은 완성 직전까지 마치 생명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모한다. 그래서 그때그때의 감정과 시대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상 드로잉은 그 표현수단으로 적합하다. 영상 회화와 영상 드로잉은 완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붓질로 지우고 덧입히는 과정의 이미지들을 낱낱이 모아서 연결한다. 단순한 평면 회화나 드로잉이 가질 수 없는 '깊이감'을 담아낸다.
작가가 개인보다 사회를 중요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작가의 첫 영상 드로잉 작품(A man in New Yorkㆍ1999)은 건조한 도시 뉴욕의 고독해 보이는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을 종이 인형처럼 오려내 배경 드로잉에 결합한 '영상 드로잉 콜라주' 기법을 사용했다. 도시를 배회하던 인물이 마지막에 하늘로 날아가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이렇듯 작가는 특유의 상상력과 드로잉이 보여줄 수 있는 느낌에 집중했다.

정석희 작가는 작품의 중간과정을 담은 책들을 전시장 한 켠에 마련했다. [사진=김세영 기자]

정석희 작가는 작품의 중간과정을 담은 책들을 전시장 한 켠에 마련했다. [사진=김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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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2014, 영상 회화, 152개의 회화 이미지, 2분 10초, 가변크기

구럼비, 2014, 영상 회화, 152개의 회화 이미지, 2분 10초,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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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초기에는 내면에 집착했다. 개인의 문제나 경험, 실존문제를 놓고 작업했다. 그러다 문득 작가의 일이 개인의 일만이 아니라 사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작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문제는 곧 작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작가가 가장 예리한 촉수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소통해야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전시장 벽 전체를 웅장한 자연의 공간처럼 만든 '구럼비(2014)'는 작가의 근작 중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럼비'는 제주도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파괴 사건(2012)'을 다룬 영상 회화로, 거대한 바위와 푸른 용천수가 거친 철조망으로 뒤덮이는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해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그렸다. 세월호 사건(2014)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굵직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다양한 작품들로 표현한다. '에피소드(2014)' 작업노트에는 그의 당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4월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수백 명이 탄 배가 침몰하면서 나의 드로잉은 좌초되었다. 한동안 그리지 못했다. 모든 의미는 무의미해졌다. (중략) 그래도 나의 작업은 계속되어야 했다. 나는 세상만사 실타래같이 엉킨, 꼬일대로 꼬여버린 외부의 세계에서 나의 내부로 더욱 깊이 가라앉아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나의 내부는 용광로처럼 끓어올랐고, 좀처럼 식지 않았다. 이 작업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에게로 끝나지만, 그 '나'는 '너'의 문제로 전이되고, '너'는 '나'의 문제로 확산되었다. '나'와 '너'는 곧 하나였다."

늪, 2016, 영상 회화, 78개의 회화 이미지, 8분 18초, 가변크기(사진 왼쪽) 늪,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40x200cm(사진 오른쪽)

늪, 2016, 영상 회화, 78개의 회화 이미지, 8분 18초, 가변크기(사진 왼쪽) 늪,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40x200cm(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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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멸하는, 2016, 영상 회화, 241개의 회화 이미지, 3분, 가변크기(사진 왼쪽) 명멸하는, 2016, 캔버스에 혼합재료, 140×200cm(사진 오른쪽)

명멸하는, 2016, 영상 회화, 241개의 회화 이미지, 3분, 가변크기(사진 왼쪽) 명멸하는, 2016, 캔버스에 혼합재료, 140×200cm(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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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묵직한 사건을 표상하면서도 상상의 요소들을 놓치지 않는다. '구럼비'에서도 바위에 사는 정령을 그려 넣어서 치유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4)', '늪(2016)', '명멸하는(2016)'으로 이어진다. 특정 사건을 사회 속 개인의 삶과 소통의 문제로 아우르며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정석희 개인전 '시간의 깊이'는 오는 12월23일까지 OCI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최근까지 이어온 작가의 20년간 작업물을 총망라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압축된 영상 드로잉과 영상 회화 열 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와 함께 평면 회화 열 점과 소형 드로잉도 여럿 선보인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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