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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 올해 노벨문학상은 개인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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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브게니 예프투센코(Yevgeny Yevtushenko)'의 시낭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 소련의 대표적 반체제 시인인 그가, 1988년 국제 펜클럽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왔을 때였지요. 서소문 어느 아트홀에서 그의 낭송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제일 앞줄에서 그 유명한 시인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그의 몸짓과 목소리가 선명히 떠오릅니다. 그는 마치 한 사람의 배우나 가수처럼 보였습니다. 소품이나 배경음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는 노래처럼 리드미컬했고 동작은 흥미로웠습니다.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서 그 큰 무대를 다 쓰더군요. 미끄러지듯 걷다가 우뚝 섰다가 춤을 추듯이 흐느적거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몸은 그의 시가 시키는 대로 다양한 동선(動線)을 그렸습니다. 표정도 자주 바뀌었고 제스처도 다양했습니다.
 몇 가지 시 제목은 우리말로 읽기도 했지요. '나의 소망'을 '나의 사망'으로 발음하는 바람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시를 읽고 있는 예프투센코의 육성은 강물처럼 출렁거렸고, 음률은 바람처럼 자유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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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여, 나는 그대의 모든 바리케이드에서/싸우고 싶다./매일 밤 지친
 달이 되어 죽고/ 매일 아침 새로 태어난 태양이 되어/부활하고 싶다.

 순간, 시인의 몸도 가수의 그것처럼 하나의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성적 사유와 감각적 기교로 생명의 원천을 즐겨 노래한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가 함께 떠올랐지요. 시인 김종길 선생께 들은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당신이 딜런 토마스의 시낭송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데, 폭포수 옆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는 증언.

 오늘 아침엔 거기에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가수 '밥 딜런(Bob Dylan)' 생각을 포개어 봅니다. 단언컨대, 밥 딜런은 시를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딜런 토마스'가 되고 싶었던 악기입니다. 밥 딜런은 애초에 자신의 정체성을 시인에 두었지요. 그렇기에 저는 그를 시인이라 부르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시인은 제 몸 하나가 온전한 일터입니다. 직장이지요. 자신이 고용주이며 스스로가 근로자입니다. 저 혼자 갑도 되고 을도 됩니다. 지은이면서 최초의 독자입니다.
 비판자이면서 옹호자입니다. 포착되지 않은 장면의 발견자입니다. 보고되지 않은 사건의 기록자입니다. 적발되지 않은 상황의 고발자입니다.
 외롭고 고단하지만 뜨거운 삶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온몸으로 밀고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일과 성취 중에서 가장 뾰족한 끝자리에 오른 것들을 우리는 시라고 부릅니다. 이를테면 '춤의 시', '모래의 시', '빙판의 시'..... 시인도 그만큼 많습니다. '링 위의 시인'도 있고, '건반 위의 시인'도 있습니다.
 밥 딜런은 기타를 들고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데까지 올라갔습니다. '천국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피뢰침도 없는 첨탑 끝에 위태롭게 서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 일본영화('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속 대사처럼 '신의 목소리(神樣の聲)'를 들려주었습니다. '답은 바람이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천재 시인 '랭보'와 '예푸트센코'에 비유하기도 했지요. 저는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한 가수가 지향해온 궁극적 가치가 시인의 꿈과 동류항(同類項)임을 인정받은 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문학의 만국공원에 세운 하나의 기념비(記念碑) 쯤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지구대가족의 꿈과 우주의 평화를 모토로 수천 년을 이어온 문학의 포용력과 위엄을 만천하에 보여주려는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카메라가 펜이나 연필을 대신하고, 인공지능이 모든 창작을 해보겠다고 덤비는 오늘, 문학의 정신을 다시금 환기(喚起)시키려는 의도로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직 글로 옮겨지지 않았을 뿐, 그 자체가 문학적 서사이며 시적 텍스트인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지 않을 뿐, 저마다의 언어로 시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저는, 이번 노벨문학상은 펜 이외의 도구로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에 나누고 세상에 보태온 바가 문학의 그것에 필적하는 사람들을 시인으로 호명(呼名)한 것이지요. 위대한 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죽음에 바쳐진 예푸트센코의 조시(弔詩)가 그런 짐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암스트롱의 트럼펫'이라는 시의 끝 대목 말입니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시인(the poet)과 재즈가수(the great jazzman)
 는 같은 형제/그들은 같은 것을 세상에 주기 때문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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