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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예식장을 나서며

최종수정 2020.02.11 16:36 기사입력 2016.10.1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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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

윤제림 시인

또 주례를 섰습니다. 이제 그만 맡아야지 하면서 결심한 것만도 벌써 여러 차례지만, 막상 제자들이 찾아와 간청을 하면 금세 물렁물렁해집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지만, 제자를 이기는 선생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일 년에 두어 번쯤은 이 자리에 섭니다.

이번에도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할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 인생 마라톤의 출발선을 지켜줄 만한 사람인가?’‘이 아름다운 약속의 증인이 될 만한가.’‘가장 빛나는 시간의 목격자로서 영원히 이들 편에 서서 이들을 응원하고 옹호할 수 있을까.’

저울질이 끝나려면 여러 날이 걸립니다. 저를 주례로 세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흠결이 많은 까닭입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아주 오래된 벽(癖)이나 고약한 습관들이지요. 제가 얼마나 부실한 사람인지 알면, 부탁을 철회할지도 모릅니다.

너무 거창한 이유만 앞세웠습니다. 그렇게 근엄하고 근사한 경계심만으로 주례 승낙을 고민하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사실은 아주 가볍고 일상적인 핑계가 더 많습니다. 주례 역시, 날 받은 신랑 신부와 가족들처럼 조심스레 지내야 하는 것이 제일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삼가고 긴장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하면서 근신(謹愼)해야 합니다. 주례가 눈에 다래끼라도 생겨서 안대를 하고 예식장에 나타난다면. 감기에 걸려서 콧물을 훔치며 혼인서약을 받거나, 코맹맹이 소리로 성혼선언문을 읽는다면. 술 취해 걷다가 부딪쳐서 콧잔등에 반창고라도 붙이고 나타난다면.
다행히, 그런 방정맞은 가정법은 그렇게 힘이 세지 않습니다. 긍정적 사고와 명분이 고개를 들면 눈 녹듯이 스러집니다. ‘덕분에 한동안 술 조심, 길조심, 몸조심하면서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생각으로 바뀝니다. 저를 이런 자리에 설만한 사람으로 보아주는 제자가 있다는 것에도 고마워하게 됩니다.

[윤제림의 행인일기]예식장을 나서며

어쩌면 그것은 대단히 관대한 선의(善意)의 제안일 것입니다. 선생의 허물은 못 본 척하고, 언제나 선생의 괜찮은 모습만 바라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자위(自慰)일 수도 있지만 제가 아직은 저들에게 결정적으로 실망을 안긴 적은 없다는 증거로 여겨도 좋을 것입니다. 못난 얼굴을 아직은 용케 감추며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감도 거기에 포개집니다.

그런 생각들이 오늘처럼 주례를 서는 날의 즐거움과 행복감으로 이어집니다. 평소에 보고 싶던 제자들을 한자리에서 보게 되는 기쁨입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테이블 네댓 개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으면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몰라보게 예뻐지고 늠름해진 청년들이 술잔을 들고, 혹은 명함을 들고 제게로 다가오면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습니다.

“쯧쯧...저래 가지고 세상을 어떻게 살꼬.”혀를 차며 걱정하던 제자일수록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힘 있는 목소리로 제 안부를 물어옵니다. 대견합니다. 보너스를 받는 기분입니다.

또 하나의 기쁨은 한복을 입는 것입니다. 두루마기 자락과 옷고름을 펄럭이며 도시 한복판을 걷는 즐거움입니다. 처음엔 무척 건방진 사람이라고 오해했다가 오히려 좋아하게 된 사람, 한복장인(匠人) ‘신(申)선생’을 고마워하면서 걷습니다. 입을 때마다 만족스러운 옷을 지어준 그 사람의 눈썰미를 지금도 신기해하면서 걷습니다. 우리 옷의 매력에 한껏 취해서 걷습니다.

한복 일습(一襲)을 지으러 그의 가게를 찾아간 날, 그는 색상 견본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색깔은 무조건 이걸로 하세요. 그 옆의 것은 선생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걸로 하면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이 색으로 두루마기를 해 입고 가만히 미소만 머금고 계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오늘도 그의 말을 실감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 한복에 호감을 표시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비싸고 질 좋은 옷을 입어도 별로 태(態)도 나지 않고 맵시도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리를 곧추 세우고 의젓한 걸음걸이를 만들어준 이가 새삼스레 고마운 날입니다. 고무신을 신고도 씩씩하게 걷게 만드는 우리 옷이 고마운 날입니다.

제자들은 더 고맙습니다. 한복을 입고 제법 값나가는 사람처럼 단상(壇上)에서 이야기할 기회를 준 사람들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제자는 선생에게 한복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복이 주인의 몸을 관대하게 품어주듯이 제자들은 선생을 믿음직스럽게 둘러싸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식장을 나서면서 저는 또 다짐합니다. “이제 주례는 그만 서야지. 앞으론 무조건 사양해야지. 마음 편히 술을 마시고 싶으니까. 이마에 큼지막한 뾰루지가 생겨도 나만 창피하면 되니까. 한복이야 입고 싶은 날, 차려 입고 나서면 되니까.”

하지만, 이 결심이 또 얼마나 지켜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윤제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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