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오후 한詩] 모녀 2/김기택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이윽고 그녀는 제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다.
엄마가 나이 먹는 일을 그친 후에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나이를 먹어 온 탓이다.
엄마보다 훨씬 늙었는데도
그녀는 자신보다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를 부를 때마다
그녀는 어린 나이로 돌아가서
옛 얼굴 젊은 나이에서 나오지 않는 엄마를 본다.
불러도 목소리가 닿을 자리가 없어서
만질 손과 얼굴이 없어서
엄마는 늘 목소리 속에만 머물러 있다.
자꾸자꾸 불러서 목청 안에만 가득하다.
엄마 부르는 소리가 허공을 헤매도
엄마는 도저히 슬퍼지지 않는 표정이 되어
늘 엄마의 자리에 있다.
그녀의 주름과 흰머리가 나날이 늘어나도
엄마는 딸과 늙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불쑥불쑥 엄마를 불러서
엄마와 딸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서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만 몰라보게 늙어 가고 있다.

[오후 한詩] 모녀 2/김기택
AD
원본보기 아이콘

■ 이 시에 등장하는 "엄마"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나 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행을 읽고 나면 참 안타깝고 애틋하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일이 하나 있다. 살다가 힘들고 외로울 때 "엄마아" 하고 불러 보면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아니라 젊고 상냥한 엄마가 저쪽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야 모르겠는데,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에 시달리다 터덜터덜 축 늘어진 발걸음으로 집에 오다 보면, 그러다 집이 저 멀리 보이는 길목쯤에 들어서면, 달꽃이란 게 있다면 그처럼 아늑하게 환한 엄마가 대문 앞에 서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래서 "엄마아" 하고 입속으로 가만히 부르면 이런 말들이 도란도란 들리는 듯도 하다. 아이구우, 우리 강아지,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술래만 했어? 무릎 까졌네. 호오 하자. 얼른 씻고 밥 먹자. 그만 울고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