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물가상승률에 주목하는 것은 저물가가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속성장기에는 그만큼 물가도 급하게 올랐지만, 실질성장률 2%대가 고착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은 최근 1%를 넘기기도 힘든 상황이다. 당장 물건값이 오르지 않는 점만 보면 가계에 유리할 수 있지만 경제 전반의 활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로, 기업과 가계 모두 힘들어지게 된다. 불황 국면에 진입한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물가 하락인 셈이다.
세계적인 저물가시대는 끝나가고 있는 것일까. 저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가의 흐름은 다소 긍정적이다. 최근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유가는 지난해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 올들어서 배럴당 30달러(두바이유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3월 들어 상승세를 타면서 40달러 가까운 수준까지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향후 유가 전망은 두 갈래로 갈린다. 산유국의 감산 노력으로 어느 정도 유가가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과 세계 수요부족이 이어지고 있어 당분간 저유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팽팽하다. 다만, 저유가로 산유국 경제가 파탄이 난 상황에서 더 이상 과잉공급을 이어가기 어렵고, 산유국 간에 펼쳐졌던 치킨게임도 장기간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분분하다.
정부가 올해부터 실질성장률 뿐 아니라 물가를 포함한 경상성장률을 함께 관리하기로 한 것은 물가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물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면서 "통화당국이 물가정책을 담당하고 있지만, 기재부도 관심을 갖고 다양한 정책 툴을 함께 고민해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성장 이겨내야 물가도 제자리= 정부가 목표로 내건 올해 경상성장률 4.5% 달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실질성장률 3.1%에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1.4%가 목표치다. GDP 디플레이터는 소비자물가지수와는 달리 교역조건이 감안된 개념이다. 유가 하락폭이 축소되거나 오르면 GDP 디플레이터는 오히려 떨어져 국제 원자재 가격의 향방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가 0.7%에 그쳤지만, GDP 디플레이터가 2.2% 오른 데에는 유가하락에 따른 교역조건 개선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실질성장률 3.1% 달성도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민간 연구기관은 2% 초중반의 실질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실질성장률과 GDP 디플레이터의 흐름을 보면, 정부의 경상성장률 목표가 현실화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물가는 성장률과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많아 지금과 같은 저성장을 벗어나야 적정 물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성장률은 낮은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도 물가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4월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해야 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3월 소비자물가지수의 추이에 주목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근접할 경우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연준은 소비자물가가 올해 말까지 1.6%, 내년 1.8%, 2018년에 2%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옐런 연준 의장은 지난 18일 기준금리를 연 0.25%로 동결하고 당초 계획했던 올해 기준금리 인상 횟수를 4차례에서 2차례로 하향 조정했지만, 향후 물가 흐름에 따라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저물가는 저성장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세계 경제가 살아나야 물가도 적정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 최근 저성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 과잉과 세계적 고령화 현상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구조조정 등을 통해 버블이 꺼지면 물가도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오히려 세계가 처음으로 겪게 될 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인간 수명이 갑자기 20~30년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경제·사회적 현상을 기존 경제이론과 정책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우리 정부도 머지 않아 닥칠 초고령화 사회에 앞서 중장기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기업·산업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은 두 말할 필요없는 선결과제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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