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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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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훈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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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글은 의미 전달이 명확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특정한 소수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쓰는 글이라면 이 두 가지 덕목은 절대적이다. 특히 신문기사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날이 선 정확한 문장은 독자에게 최단거리로 다가간다. 반면 문장이 끝을 맺지 못하고 늘어지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았음을 자인하는 행위이다. 말이 길어지면 말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 말의 조련법도 익히지 못한 채 말을 타고 놀겠다는 것인가.

쉬운 내용을 쉽게 쓰는 건 조금만 수련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 건 공력은 들어가겠지만 그다지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좋은 글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쓴 글이다. 진짜 고수는 쉽게 쓴다. 쉽게 읽히는 천의무봉의 문장은 손댈 곳이 없다(그렇다면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 자는? 사기꾼이다).
구두점만 잘 사용해도 좋은 글이 된다. 글에서 뜻이 끊어지는 곳을 구(句)라 하고, 구 가운데서 읽기 편하게 끊는 곳을 두(讀)라 한다. 구두점은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위력을 발휘한다.

따옴표는 화법을 바꾸거나 풀어쓸 수 있다. 물음표는 말 그대로 몰라서 물어볼 때 쓰지만 강조할 때 더 많이 쓴다. 강조는 적당해야 하며 모르는 게 많으면 글쓰기를 자제해야 한다. 느낌표는 절제할수록 좋다. 느낌표를 남발하는 것은 감정 과잉이거나 글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자신도 모르는 채 독자에게 고백하는 행위이다. 쉼표는 글쓰기의 진통제 같은 것이다. 진통제 자주 맞으면 정작 필요할 때 약발이 듣지 않는다.

이렇게 거의 모든 구두점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마침표는 다르다. 마침표 없이 글을 쓸 수 있는가. 길든 짧든 문장이 끝나는 곳에 어김없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이 필수 불가결의 구두점은 최소 크기의 언어이지만 글에서 차지하는 위력은 그 물리적 크기에 무한 반비례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혼선을 빚을 때 마침표를 쓴다. 한 문장에 하나의 생각을 쓰고 마침표를 찍는다. 마침표는 죽은 문장을 살려내는 힘을 가졌다.
네모 칸이 아름답게 일렬로 늘어선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온전한 글자도 아닌 주제에 떡하니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마침표. 그 존재감은 대단하다.

글을 잘 쓰기 어렵다면 우선 문장부터 간결하게 써볼 일이다. 마침표를 콱 콱 찍어가며.

끝으로 이 글의 마침표를 찍기 전에 한 마디. 마침표의 의무적 사용이 면제되는 경우는 딱 둘이다. 시와 신문제목뿐이다. 문자메시지도 그러하지만 무시한다.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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