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한 저 유명한 영화광의 3단계. 첫 번째는 본 영화를 또 보는 것.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첫 번째 단계에 진입한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큐브릭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두 개의 에피소드.
'샤이닝' 촬영장의 잭 니컬슨. 그는 왜 다시 찍는지 이유도 모른 채 270번째 같은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마침내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니컬슨의 욕설. "남들은 큐브릭을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도 안 해주면서 같은 장면을 270번 NG를 부르고 그 이유도 설명 못하는 놈이다."
큐브릭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모든 장르를 넘나들었다. 히치콕과 정면승부를 벌인 '로리타'. 악몽 같은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SF영화철학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빛과 고전음악의 우아한 조우 '배리 린든'. 영화는 카메라라는 기계장치의 예술임을 보여준 '샤이닝'. 베트남전 영화의 새로운 경지 '풀 메탈 자켓' 그리고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다른 감독은 평생 하나 찍을까 말까 한 작품을 경력증명서처럼 줄줄이 달고 있다.
큐브릭 감독님, 지금 한국에서는 당신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매진 행렬이랍니다. 기분 좋지 않으십니까.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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