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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영화광의 나라

최종수정 2020.02.12 11:41 기사입력 2016.01.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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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훈구 편집부장

임훈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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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오천만이 조금 넘는 나라에서 천만 흥행영화가 매년 등장한다. 많은 관객이 같은 영화를 본다는 것은 보편성과 객관성을 담보한 재미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를 흥행으로 판단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좋은 영화를 판단하는 건 다른 문제다. 내 생각에 좋은 영화는 많은 사람이 본 영화라기보다는 반복해서 많이 보게되는 영화를 말한다. 보편성과 객관성의 재미로 무장한 영화는 많은 관객이 찾겠지만 특수성과 주관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소수의 관객이지만 반복해서 보게 된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한 저 유명한 영화광의 3단계. 첫 번째는 본 영화를 또 보는 것.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첫 번째 단계에 진입한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1971년 작 '시계태엽 오렌지'는 20년 전 홍대 앞 담배연기 자욱한 '어둠의 공간'에서 처음 본 이후, 비디오로 DVD로 반복해서 보았다. 큐브릭은 46년 동안 활동하면서 13편밖에 만들지 않은 과작의 영화감독이다. 타협 불가 일방통행 유아독존으로 만들어낸 그의 영화들은 열혈 영화광들의 만신전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큐브릭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두 개의 에피소드.

'샤이닝' 촬영장의 잭 니컬슨. 그는 왜 다시 찍는지 이유도 모른 채 270번째 같은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마침내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니컬슨의 욕설. "남들은 큐브릭을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도 안 해주면서 같은 장면을 270번 NG를 부르고 그 이유도 설명 못하는 놈이다."
자신의 작품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것으로도 악명 높은 큐브릭 감독은 1996년 한국에서 지각 개봉한 '풀 메탈 자켓'의 광고카피도 자신이 한글로 직접 썼다. (이 고집불통은 믿을 만한 지인에게 물어물어 썼다기보다는 그렸을 것이다) '전 세계 매스컴이 격찬한 전쟁영화의 진정한 걸작'이라는 문구가 국내 배급사 팩스로 날아왔다. 그런데 누구의 잘못인지 '걸작'이 '걸직'으로 쓰여 있었다. 배급사는 당연히 오타로 생각하고 고치는 과정에서 바르게 쓴 문구를 팩스로 보내고 수정 이유를 일일이 설명한 뒤 허락을 받아야 했다.

큐브릭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모든 장르를 넘나들었다. 히치콕과 정면승부를 벌인 '로리타'. 악몽 같은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SF영화철학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빛과 고전음악의 우아한 조우 '배리 린든'. 영화는 카메라라는 기계장치의 예술임을 보여준 '샤이닝'. 베트남전 영화의 새로운 경지 '풀 메탈 자켓' 그리고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다른 감독은 평생 하나 찍을까 말까 한 작품을 경력증명서처럼 줄줄이 달고 있다.

큐브릭 감독님, 지금 한국에서는 당신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매진 행렬이랍니다. 기분 좋지 않으십니까.


임훈구 편집부장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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