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여담]낯짝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박철응 금융부 차장

박철응 금융부 차장

원본보기 아이콘
군대 시절, 유난히 얼굴 피부가 두꺼운 후임이 있었다. 두껍기도 하고 아주 빳빳해서 '빳빳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행동도 얼굴만큼이나 유별났다. 실수가 잦았고 때로는 거짓말도 했다.

한 번은 겨울 저녁에 매점 심부름을 보냈더니 잠시 뒤 돌아와서는 문을 닫았더라고 했다. 그 곳에선 절실했던 주전부리의 즐거움을 접어야 했다. 그런가 했는데 옆 소대 졸병이 박스에 과자와 만두 등을 잔뜩 담은 채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대 파티라도 했었나보다.
적어도 내무실에선 스스로 장성급으로 착각하고 사는 병장 때였다. 얼굴 두꺼운 후임을 찾아 불같은 추궁을 해댔음은 당연지사다.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추워서, 가다가 그냥 돌아왔다'는. 아무리 관대하려 해도 명령 불복종과 선임 능멸의 죄과에서 한 점도 덜어낼 수 없었다. 엄히 다스렸다.

비슷한 류의 일들이 적잖았다. 하지만 그는 천성이 밝았고 속내야 어떤지 몰라도 자고 나면 어제 일들은 잊은 듯 했다. 그리고 졸병 생활 중에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이 숨겨지지 않던 후임이었다. 혼내면서도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짬밥'이 더 쌓이고 나의 제대가 가까웠을 무렵이다. 그가 졸병들을 모아놓고 군기 잡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는 내가 보고 있는 줄 몰랐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의 목소리. "야, 이 XX들아, 나 졸병 때는 진짜 안 그랬다. 아우, 똑바로들 좀 하자!" 그 때부터 얼굴 피부와 성격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믿음 같은 게 생겼다.
제대하고 만난 그는 물론 더욱 밝아져 있었고 나는 취기를 빌려, 비겁하지만 '진심으로' "그 때는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오히려 나를 달랬다. "다 잊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을 때였습니다"라고. 나는 그를 얼굴 두껍고 순수한,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낯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용산 참사 과잉 진압의 도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 국정원 대선 댓글 사건 축소 의혹을 받았으며 청문회 선서를 거부했던 사람, 공중파 PD에게 "네가 뭔데"라고 외치며 '스폰서 검사'로 불렸던 사람, 그리고 아나운서 비하와 불륜 의혹 등으로 점철된 사람 등등 때문이다.

물론 법적으로 깨끗하다고 항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고 초유의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TV를 통해 검사의 낯 뜨거운 속살이 드러났고, 방송인으로 변신했던 정치인의 불륜 공방 역시 중계되다시피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적어도 대명천지에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고 나서기에는, 부끄럽지 않은가. 이 차원이 다른 낯 두꺼움에 황망스럽기만 하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