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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eye]1400년 사우디-이란, 이슬람 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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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세계 원유 매장량의 20%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만. 페르시아는 이란의 옛 이름이다. 하지만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마주하고 있는 세계 1위 원유 수출국 사우디 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이라는 이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우디는 페르시아만을 아라비아만이라고 부른다.

새해 벽두부터 사우디와 이란이 충돌하면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이냐 아라비아만이냐 명칭 다툼에서 알 수 있듯 사우디와 이란은 앙숙이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종파가 다르고 민족과 정치 체제도 다르다. 특히 최근 분쟁 과정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이슬람 종파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같은 이슬람이지만 아랍 민족 국가인 사우디는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관리하는 수니파의 맹주인 반면 페르시아 민족 국가인 이란은 시아파의 중심 국가다.
전 세계 16억명의 이슬람 인구 중 85%는 수니파다. 시아파는 15%에 불과해 수니파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불거진 시기는 시아파가 세력을 키웠던 때와 일치한다. 곧 이란의 역사적 변화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파비 왕조의 건국과 1979년 이란 혁명을 꼽을 수 있다.

1502년에 시작된 사파비 왕조는 651년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멸망한 후 페르시아 민족이 약 900년만에 세운 나라였다.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킨 민족이 아랍 민족이었다. 이후 페르시아 민족은 사파비 왕조가 건국될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아랍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이란 입장에서는 아랍 민족의 중심국가인 사우디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 없는 셈이다.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사파비는 중동에서 최초로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삼은 국가였고 사파비 왕조의 탄생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결정적인 균열을 초래했다. 사파비 왕조 건국 당시 중동의 중심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었다. 수니파였던 오스만 제국의 9대 술탄 셀림 1세는 1514년 사파비 왕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성전을 선언한다. 이후 사파비 왕조와 오스만 투크르 제국은 이후 백년 가까운 싸움을 벌였다.
현대에 들어와 수니파ㆍ시아파 분쟁이 다시 부각된 결정적인 계기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다.

이란의 마지막 왕조였던 팔레비 왕조(1925∼1979)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우디와 공통점이 많았다. 양 국 모두 왕정이었고 친미 정권이었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은 국가 정책으로 미국 유학 정책을 추진하기도 한다. 미군은 이란에 주둔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소련을 견제했다. 1979년 혁명 이후 제정된 법에 따라 현재 이란 여성들은 '차도르'를 써야 하지만 팔레비 왕조 시절에는 이란의 젊은 여성들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다. 팔레비 왕조는 이란의 근대화 개혁을 추구했고 이 시기에는 되레 정부가 이슬람 성직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 갈등이 폭발해 이란 역사가 근본적으로 뒤집힌 것이 1979년 이란 혁명이었다.

아야톨리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 이란 혁명이 성공하면서 친미 왕정 국가였던 이란은 반미 시아파 신정 공화정이 됐다. 사우디와 미국이 모두 이란의 적이 됐다. 사우디는 시아파 국가의 등장이 껄끄러웠을 뿐 아니라 같은 왕정이었던 이란이 공화국으로 바뀐 것도 부담스러웠다. 미국도 이란의 혁명 성공으로 중동의 반미 움직임이 확산될까 불안했다. 이란과 국경이 닿아 있는 이라크도 난처한 입장이었다. 이라크의 정부는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었지만 국민은 시아파가 65%로 우위였다. 이런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은 1980~1988년 이란ㆍ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됐다. 이란ㆍ이라크 전쟁 당시 사우디는 이라크 편을 들었고 미국은 이라크와 국교를 회복하고 총 297억달러 규모의 대규모 무기를 공급했다.

수니파와 시아파 갈등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다시 한번 증폭된다. 미국이 대량 살상 무기를 찾겠다며 이라크를 침공해 수니파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이란과 함께 이라크에도 시아파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국민 73%가 수니파지만 시아파계 바샤르 알-아사드가 정권을 잡고 있는 시리아와 함께 시아파 벨트가 형성되면서 현재 수니파와 시아파간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돼 있는 상황이다.

2011년 중동에 확산된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도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관계가 험악해지는 원인이 됐다. 당시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이란이 소수인 시아파들을 선동해 시위를 뒤에서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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