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 /꽃, 풀, 땅, 물, 뫼, 들, 집, 개, 닭, 소. /가장 급한 것. /불, 물, 칼, 똥, 피. /가장 무서운 것. /해, 달, 별, 검(신). /가장 익숙한 것. /눈, 코, 입, 귀, 배, 손, 발, 등, 나, 너, 그, 년, 놈.
노자의 '선건자(善建者)'는 제54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은 노자의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는다'는 말과 통한다. 김춘수가 '무엇이 되는 비밀'은 꽃을 꽃이라 불러주는 호명에 있다고 했으니, 우리도 누군가의 '불림'을 받아 어떤 존재계 속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얘기다. 노자가 잘 세웠다는 것은 '도(道)'로 네트워크가 되어 단단해졌다는 얘기이며 존재계 속에 들어왔다는 얘기다. 단단해지면 뽑히지 않는다. 김춘수가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은 단단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단단해지려면 호명을 받아야 하고 호명을 받아야 이름 없이 뽑혀나가는 존재가 되지 않는다.
개인으로 보자면 '집을 잘 세우는 것'으로 족하지만, 세상 전체로 보자면 '그것들이 잘 얽혀 꼭 포옹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선포자(善抱者)이다. 이 말을 김춘수는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로 표현했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라는 시인의 말을, 노자는 한마디로 불탈(不脫)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호명되고 소통되는 집단을 이뤘을 때, 혼자서 쓸쓸히 떨어져 나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비극은 없을 것이란 약속이다. 김춘수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라고 말한 것을, 노자는 자기 방식대로 이렇게 설명했다. "죽었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자손들이 계속 제사를 지내줄 거예요."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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