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지지시와 만물지모를 조금 과격하게 해석했다. 천지의 시작과 만물의 어머니라는 말의 차이가 뭔지 헷갈리기 쉽기에 풀어써본 것이다. 천지가 시작한다는 것은 아직 사물에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원시상태이다. 만물의 어머니라는 것은 만물에 이름이 생김으로써 비로소 그것들이 구분되고 분간되고 분별되는 개체로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우주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 생명이 탄생하여 거대한 생태계를 이룬 일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학적 상식이지만, 노자가 말하는 것은 그런 천지개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 속에 들어온 만물에 대해 호칭을 부여하고 개체를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기 전과 후를 나눈다. 아마도 우주의 탄생과 인류의 진화를 '동시에 진행된 것'이라고 이해한 노자시대의 개벽관이 작동한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이 만물에 이름을 붙인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는 관점은, 우주 본질을 움직이는 도(道)의 문제를 탐구하는데에는 아주 요긴하다.
노자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도'가 왜곡되어 진짜 '도'와는 상관없는 것을 가리키는 공허한 것이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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