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이다. 지난 번에 제대했는데 다시 입대해서 총질을 해대는 스토리 엉망의 악몽이다.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다. 며칠 전 개꿈 얘기를 꺼냈더니 은행 홍보실 A 부장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나는 집에 완전군장을 꾸려놨어요. 비상식량과 후래쉬, 라디오가 들어 있지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자나요." 동석자들이 '완전군장은 심하다'고 핀잔했지만 그는 꿋꿋했다. 핀잔하는 저들도, 핀잔받는 A도 군대 꿈을 간혹 꾼다. 제대한지 다들 십수년이 흘렀지만 군생활의 기억은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군대에 안 가면 '신의 아들'이요, 군대에 가면 '어둠의 자식'이다. 군 입대를 회피하는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을 우리는 그렇게 비꼰다. 사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애국애족의 충정을 발현하는 주역은 어둠의 자식들이요, 빽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이요, 이 땅에서 나고 자라 뼈를 묻는 소시민들이다. 손발 부르트는 겨울 삭풍을 한해 두해 견디면서 어른이 되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숙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저들이다.
그런 어둠의 자식을 같잖게 보는 신의 아들은 주변에 널렸다. 총리, 국무위원들, 국회의원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중에는 군면제가 수두룩하다. 팔다리 멀쩡한데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병인지 엄살인지로 입대를 사양한다. 그러고는 안보가 어쩌니 저쩌니 훈수질이다. 안보를 책임지겠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러니 자꾸 적들이 대한민국을 얕보는 게 아닌가, 공연히 심란하다. 저 미필들의 몫까지 채우느라 재입대 꿈을 이리도 꿔대는 게 아닌가, 괜히 억울하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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