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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재입대 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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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가을 밤안개 짙은 어느 날. 작전 지역은 강원도 양구의 최전방, 작전명은 적군 토벌. 칠흙같은 어둠속을 한발한발 겨우 내딛는데 갑자기 탕, 탕 총성이 울렸다. '적이다, 사격!' 누군가의 외침에 우리 부대도 방아쇠를 연신 당기는데 웬걸, 딸깍 딸깍 엿장수 가위질 소리만 처량하게 들리는 게 아닌가. 어라, 이게 무슨 조화인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돌아보니 이곳은 다시 내무반. 나는 지금 말년 휴가를 다녀와서 내무반에 걸린 달력을 맥없이 바라보고 있다. 제길, 제대가 6개월이나 남았네….

개꿈이다. 지난 번에 제대했는데 다시 입대해서 총질을 해대는 스토리 엉망의 악몽이다. 어제 저녁 술자리에서다. 며칠 전 개꿈 얘기를 꺼냈더니 은행 홍보실 A 부장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나는 집에 완전군장을 꾸려놨어요. 비상식량과 후래쉬, 라디오가 들어 있지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자나요." 동석자들이 '완전군장은 심하다'고 핀잔했지만 그는 꿋꿋했다. 핀잔하는 저들도, 핀잔받는 A도 군대 꿈을 간혹 꾼다. 제대한지 다들 십수년이 흘렀지만 군생활의 기억은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북한의 포격 도발로 2030의 애국심이 불타오른다. 일촉즉발의 순간 인터넷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재입대 열풍이 불었다. "북한이 도발하면 전선에 나서겠다." 각 잡힌 군복과 번듯한 군화 사진들은 군기가 바짝 들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는 말년 병장들은 전역을 미루고 군화끈을 다시 질끈 맸다. 철없고 이기적인줄만 알았던 '요즘 젊은 것'들은 성숙했고 이타적이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키겠다'며 비장하고 결연했다.

군대에 안 가면 '신의 아들'이요, 군대에 가면 '어둠의 자식'이다. 군 입대를 회피하는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을 우리는 그렇게 비꼰다. 사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애국애족의 충정을 발현하는 주역은 어둠의 자식들이요, 빽 없고 힘 없는 서민들이요, 이 땅에서 나고 자라 뼈를 묻는 소시민들이다. 손발 부르트는 겨울 삭풍을 한해 두해 견디면서 어른이 되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숙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저들이다.

그런 어둠의 자식을 같잖게 보는 신의 아들은 주변에 널렸다. 총리, 국무위원들, 국회의원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중에는 군면제가 수두룩하다. 팔다리 멀쩡한데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병인지 엄살인지로 입대를 사양한다. 그러고는 안보가 어쩌니 저쩌니 훈수질이다. 안보를 책임지겠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러니 자꾸 적들이 대한민국을 얕보는 게 아닌가, 공연히 심란하다. 저 미필들의 몫까지 채우느라 재입대 꿈을 이리도 꿔대는 게 아닌가, 괜히 억울하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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