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옛공부의즐거움]공자와 흰색의 비밀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공자가 말한 회사후소(繪事後素)는, 주자가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2000년 뒤의 우리가 엉터리로 쓰고 있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주자는 '논어집주'에서 흰색이 있고난 다음에야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로 풀었습니다. 주희의 말은 그럴 듯해 보입니다. 흰 종이가 있어야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바탕이 깨끗해야 그림이 잘 나온다. 그러니 마음바탕을 잘 닦아라. 하지만 그건 그냥 작위적인 교훈일 뿐입니다. 논어(팔일편)를 볼까요?

자하가 물었다. "'귀여운 웃음 보조개 짓고, 고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니, 흰 것으로 광채를 내도다!'하니 무슨 말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회사후소(繪事後素)로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가 맨 뒤로 온다는 말씀이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를 깨우치는 자, 상이로다.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겠구나."

공자와 자하는 시에 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자하는 위나라 사람이라 위나라 노래의 가사(衛風)를 인용했습니다. 이 노래는 시경에 석인(碩人ㆍ늘씬한 여인)으로 소개된 시입니다. 고운 눈이 또렷하니 흰색 때문에 더 빛난다는 구절에 대해 물은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공자는 원래 그림은 흰색이 마지막으로 받쳐줘야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야. 아하, 흰색은 그러니까 예절같은 것이군요. 공자는 원리만 말했는데, 자하는 그것의 응용까지 설명해 낸 것이지요. 그러니까 공자가 '너랑은 시를 논할 수 있겠군'이라 칭찬해 준 것입니다. 화장발이 멋지려면 마무리를 흰 분으로 잘 정리해야 한다. 색이 없는 흰색은 모든 색을 갖추게 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예의는 그래야 한다.

이것을 주자는 '그림 그리기 이전에 흰 바탕이 먼저 있어야 한다'를 풀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주자시대에는 수묵화가 유행이었기에 흰 바탕 위에 그리는 게 중요했고, 공자시대에는 종이가 없었고 피륙이나 대나무 위에 그렸기에 채색을 먼저하고 그 마지막에 흰색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물감 그림을 그릴 때 흰 물감과 검은 물감으로 음영과 양감을 주는 이치와 비슷하겠지요. 흰색이 바탕을 이루는 점에서는 같지만, 원바탕이냐 아니면 마무리냐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그리 작은 것은 아닙니다. '바탕이 희어야 한다는 것'은 타고난 것에 대한 칭찬이 되기 쉽지만 '흰 것의 마무리'는 소박함이 인격을 완성하며 그 하얀 영혼이 삶의 끝까지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자의 뜻보다 공자의 뜻이 훨씬 좋습니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