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망언에 분개해 써내려간 '조선 어부 안용복' 이야기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김문수의 작품 가운데 '증묘(蒸猫)'가 있다. '증묘'란 도둑을 잡거나 애정에 얽힌 누군가를 해코지하려는 일종의 저주 기속(奇俗)이다. 고양이에게 저주하려는 대상을 알려주고 산채로 솥에 가둬 삶으면 고양이의 원혼이 상대를 찾아가 화를 입힌다고 한다. 작품 속 주인공 '그'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치하일 때 국군 소위인 삼촌이 숨은 곳을 적에게 알려 죽게 만든다. 그의 숙모는 증묘를 하며 남편을 앗아간 원수를 저주한다. '그'가 홀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자 숙모가 거두어 상경한다. 그는 청년으로 자라면서 숙모와 동거한다. 잡지 기자로 일하는 친구가 장난삼아 '청춘 복덕방'이란 기사에 그를 좋은 신랑감으로 소개하자 많은 여자들이 그를 찾는다. 질투를 느낀 숙모는 또 증묘를 한다. "네가 이 지경이 되는 것은 우리 조카의 마음을 뺏은 여자 때문"이라며. 어느 날, 그는 젊은 여자와 길을 걷다 마주 오는 숙모를 발견하곤 맨홀 속에 숨는다. 그런데 근처 건물 공사판에서 던져대는 통나무들이 그 위를 덮어버린다.
세상을 떠난 지 이태가 훨씬 지난 올해 김문수의 작품집이 나왔다고 해서 놀랐다. 정확히는 소설 선집이다. 책의 제목은 '비일본계(非日本界)'인데, 표제작은 소설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발표한 중편 소설이다. '非日本界'란 일본의 지경이 아니니 곧 '조선지계(朝鮮之界)'라는 뜻이다. 조선의 어부 안용복이 대마도와 일본을 누비며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역설하고 에도 막부의 관백으로부터 서계(공문서)까지 받아낸 사실(史實)이 소설의 뼈대이다. 김문수가 40여년 전 청계천의 헌책방에서 안용복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받은 충격이 이 소설을 쓴 계기다. 그는 '창작노트'에 적었다.
"처음 안용복 님을 알게 된 것은 40여 년 전 청계천 고서점에서다. 책 구경을 하다가 우연히 펼쳐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읽은 짧은 얘기, 그러나 충격은 컸다. 소설로 쓰자! 자료를 찾았으나 용이치 않았다. 게다가 그 무렵 한호(寒戶)의 가장이 돼 밥 버는 일로 이리 뛰고 저리 닫다 보니 그만 안용복 님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러다 10여 년 전, 일본의 망언과 광언들이 그 잊었던 생각을 일깨웠다. 그래, 소설 '독도'를 쓴다! 사명감이 들끓었다. 그러던 중 이 작품을 쓸 기회를 얻었다. 소설 '독도'의 계획과는 다른."
나는 2009년 가을 서울 다동에 있는 일본식 선술집에서 김문수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 그토록 짧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옛날에 그에게서 들은 작품평에 대해 말하자 그는 빙긋이 웃으며 "글쎄, 내가 왜 그런 식으로 얘기했을까. 더 정확하게는 '이런 식으로 써버릇하면 나중엔 결국 음탕한 글을 쓰게 된다'는 경계가 아니었을까"하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 자리에는 시인 박제천도 있었다. 시인이 일하는 서울 동숭동 '문학아카데미'에 가서 김문수의 사진을 빌려왔다. 이번 주말에는 서점 몇 곳을 돌며 아직 서가에 꽂힌 그의 소설집을 사들일 생각이다. huhball@
<비일본계/김문수 지음/솔/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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