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인문학’은 노자와 ‘도덕경’을 중심 텍스트로 삼아 생각하는 법으로서의 철학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최 교수가 노자를 얘기하는 것은 노자 철학을 소개하거나 ‘도덕경’을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다. 노자를 화두로 삼아 인류의 생각과 철학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들려주고는 노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정신의 양식으로 삼자고 말한다.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저자는 ‘대답은 잘하면서도 질문은 잘하지 못하는 우리 학생들’이 노자를 통해 ‘자기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법을 배울 것을 권한다. 그에게 노자는 기존의 신념이나 가치,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다. 노자로부터 고정된 신념과 기준에서 벗어나 ‘나(자기)’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배운다면 그것이 곧 ‘생각하는 힘’이며 인문적 통찰력이라는 것이다.
두 책은 대체로 ‘쉽고, 편하며, 간결’하다. “하루 5분의 시간을 통해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최고의 지혜와 최선의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5분 철학)는 안내문처럼 최소 투자로 최대 성과를 얻으라고 권하는 듯하다. 그 점에서 분명 이들 책은 ‘대중적’으로 유용하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 점에서 지금의 인문학서의 범람이 갖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건 ‘쉽고 편한’ 책에서는 쉽고 편하게 얻을 수 있는 것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는 분명 인문의 세계를 열어줄 마중물이 필요하며 인문학의 입구로 안내해 주는 인도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생각이든 철학이든, 그래서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답을 찾아보는 것은 그 자신의 몫이다.
그러므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술술 읽히게 쉬운 말로 써 내려간 이런 책들을 애써 ‘진지하게’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학문에 관하여’에서 말한 바대로 ‘믿기 위해서나 동의하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믿음과 동의를 유보하는 태도야말로 최 교수가 말하듯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신념이나 지적 체계에 좌우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의 바탕이다. 그것은 예컨대 공자에 대한 최 교수의 해석을 보면서 그 ‘독창적인’ 관점에 대해 흥미를 갖더라도 이를 ‘명쾌한 설명’이라며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태도를 말한다. 저자는 ‘논어’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동이불화(同而不和)’를 설명하면서 ‘군자’는 기존 질서를 지키려는 수구적인 세력으로, ‘소인’은 새로 부상하는 신흥계급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공자의 사상이 인(仁)을 일원론적인 본질로 상정하는 직선적인 가치관이라고 ‘과감하게’ 단정한다. 독창적이긴 하지만 지나친 단순화가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이는데, 바로 이런 대목에서 최 교수가 말하듯 저자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외국의 저자를 소개할 때 지나치게 후한 칭호를 붙여주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때로는 제대로 된 독서의 출발이랄 수 있다. ‘5분 철학’의 저자에 대해 출판사는 영국의 ‘석학’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저자의 약력을 보건대 그 같은 칭호를 붙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신학과 철학 등 많은 분야를 공부한 것은 사실인 듯하고 ‘종교와 세속의 믿음에 관한 왓킨스 사전’이라든가 ‘2012년 마야 예언’ 같은 전작들의 목록으로 보건대 흥미로운 저작들을 많이 내놓는 것은 맞는 듯하지만 석학이라는 후광으로 저자가 제기한 80가지 질문에 면류관을 씌워주는 것은 다소 지나쳐 보인다.
‘5분 철학’에서 저자는 말한다. “살아 있는 한 의문은 없을 수 없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을 찾느라 자칫 평생을 허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제대로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질문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질문하는 것은 ‘쉽고 편한 길’로는 얻어지기 힘들다. 가볍게 읽고 즐길 수 있는 책들도 물론 괜찮다. 단 그런 책들은 대체로 인문학의 식단에서 가벼운 전채 요리이기 십상이다. 제대로 기운을 내려면 결국 ‘주식(主食)’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최진석 지음/ 위즈덤하우스/1만4800원>
<5분 철학/제럴드 베네딕트 지음, 박수철·정혜경 옮김/지와 사랑,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