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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보고서 리뷰]'중국으로 끌려가 60년간 고국으로 못 돌아와'

최종수정 2014.09.09 09:05 기사입력 2014.09.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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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피해 할머니 증언④

이귀녀 할머니.

이귀녀 할머니.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31. 이귀녀 '중국으로 끌려가 60년간 고국으로 못 돌아와'

충북 청주가 고향인 이귀녀 할머니는 1943년에 중국 위안소로 끌려가 2년간 고초를 겪었다. 해방이 되고 난 이후 중국인 남편을 만나 중국에서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60여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2012년 대한민국 국적 회복한 후에야 고국으로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워낙 세월이 흘러 친척들을 찾긴 힘들었고, 지금은 경기도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 머물고 있다. 우리말을 많이 잊어버린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가 여의치 않다. 면회 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어릴 때 복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할머니는 지금도 고향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훔친다.

이○○ 할머니.

이○○ 할머니.

#32. 이○○ '사람들에게 피해가 알려지는 것도 두려워'

1925년 태어난 이○○ 할머니는 조카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관절염과 허리 통증으로 거동이 힘들지만 지팡이를 짚고 동네를 산책하는 재미로 산다. 이웃들과도 정답게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할머니 집에 찾아왔을 때도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할머니의 피해 사실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도 많은데, 여러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서 창피했다고 전했다. 할머니는 "위안부가 무슨 죄인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말했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평화의 집'에 입소하려고 했지만 건강이 악화돼 포기했다. 할머니는 활동가들과 헤어져야 할 때면 대문 밖으로 나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든다.

이○○ 할머니.

이○○ 할머니.

#33. 이○○ '최근 건강 악화…수요집회 참석 못해 미안해'
충청남도 당진에 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뒤늦게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이 됐다. 당초 본인은 등록을 원하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이 할머니 사정을 듣고 신고해줬다고 한다. 동생이 일찍 세상을 떠 그의 아들을 데려다 키웠다. 할머니는 몇 년 전 고관절 수술을 한 뒤 거동이 불편해져 보행기를 타고 이동한다. 최근에는 노환으로 시력과 청력이 크게 악화됐다. 그래도 매일 오전마다 간병인이 와서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해주기 때문에 한결 낫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주변 이웃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할머니 집에 모여 말동무가 돼 주기도 한다. 활동가들이 찾아오면 TV방송을 통해 수요집회를 보고 있다면서 함께 참석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이○○ 할머니.

이○○ 할머니.

#34. 이○○ '국내외 학술대회서 위안부 참상 공개 증언'

경상남도 산청이 고향인 이○○(91) 할머니는 17세에 강제로 대만에 끌려가 22살 때까지 5년간 위안부 생활을 겪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지옥 같은 위안소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에게조차 그동안 겪은 일을 말하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2003년 위안부임을 밝힌 이후 2005년부터 각종 국내외 학술대회에서 공개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밝히는 일에 힘썼다.
고관절 통증 탓에 보행은 불편하지만 아흔이 넘은 나이에 비해 정정한 편이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던 이 할머니는 남편의 조카를 양자로 들여 키웠다. 현재 가족과 함께 부산에 거주하며 증손녀를 돌보고 있다.

이○○ 할머니.

이○○ 할머니.

#35. 이○○ '신분 노출될라 자원봉사자 방문도 마다해'

이○○(85) 할머니의 강제동원 시기와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공개 증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공개 서류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록 시 작성한 신고서가 전부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신분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서울 용산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자원봉사자의 방문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해당 구청에서는 분기별로 할머니 댁을 방문하거나 전화통화를 통해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살피고 있다.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할머니는 당뇨와 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지만 거동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번 방문 때 이 할머니가 "내가 요새 건망증이 심해. 가스에 물을 올려놓고도 깜빡깜빡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할머니.

이○○ 할머니.

#36. 이○○ '심한 치매에도 위안소 말하면 입 다물어'

이○○(89) 할머니는 1925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났다. 조실부모하고 고모집에 양녀로 들어갔던 할머니는 16세 때 대만 위안소로 끌려가 고초를 겪다 해방 후 풀려났다. 위안부 피해 등록은 2001년 7월에 했는데 함께 위안소에서 생활한 또 다른 피해 할머니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할머니는 지금도 위안소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아유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골이 무겁다"며 입을 꾹 닫는다. 고혈압ㆍ대장염ㆍ심장병 등을 앓고 있는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 없이는 외출이 불가능하다. 치매 증상도 심해져 지난 6월 '합동생일파티'가 끝난 후 요양보호사가 집 안으로 모시자 "누군데 우리집엘 가려고 해?"라고 되묻기도 했다. 현재 할머니는 대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수단 할머니.

이수단 할머니.

#37. 이수단 '조선말도 잊은채 중국서 홀로 생활'

평안북도 출신인 이수단(93) 할머니는 19세 때 동네 처녀 3명과 함께 군복에 칼을 찬 일본 앞잡이에게 속아 만주로 끌려왔다. "하루에 군인 여덟에서 열 명 정도 받았어." 할머니는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위안소에서 심신이 짓밟혔다. 가까스로 풀려났지만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1970년대 초 북한의 가족과 연락이 닿아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았지만 1973년 보낸 편지가 주소불명으로 되돌아왔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현재 이 할머니는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 '조선말'도 잊은 채 홀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경로원에서 두 번의 머리수술, 정신분열증, 대퇴골 골절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최근 할머니와 만난 한 사진작가는 "인형을 안고 '아가야, 엄마는 어디로 갔니?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 할게' 하며 어르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며 근황을 전했다. 

이○○ 할머니.

이○○ 할머니.

#38. 이○○ '일곱 명이 같이 갔는데, 살아온 건 나 혼자'

1928년 경북 영일에서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이○○(86) 할머니. 열두 살 때부터 포항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며 해삼ㆍ멍게를 따서 살림에 보탰다. 열다섯 살 때 방직공장에서 한 달 일하면 한국에서 1년치 일한 봉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일본군의 꼬드김에 넘어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포항에서 일곱 명이 갔는데 살아온 사람은 내 밖에 없다." 또래 위안부들과 탈출을 도모했다가 주동자로 지목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지난 6월 기자와 만난 할머니는 당시의 상황을 전하면서 윗도리를 가슴까지 끌어 올려 인두로 지져 생긴 상처를 보여줬다. "일본이 저항한 지가 70년이 됐다. 그래도 아직 내 몸에는 상처가 남아 있다. 몽둥이 맞은 자리는 삭는데 불 지진 데는 아직까정 안 낫는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할머니는 중국에서 1남1녀를 입양했다. 지금 한국에서 함께 살고 있는 아들은 중국에서 경찰이었다. 할머니의 영구귀국 결심에 서둘러 퇴직해 어머니와 동행했다. 며느리는 아직 중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순덕 할머니.

이순덕 할머니.

#39. 이순덕 '끈질긴 법정투쟁…日서 첫 배상금 판결 받아내'

1918년생인 이순덕(96)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에서도 고령이다. 전북 이리가 고향인 할머니는 18세 때 위안소로 끌려가 7년 만에 풀려났다. 구타 탓에 시력이 떨어지고 군홧발에 치여 엉치뼈가 뒤틀렸다. 칼자국과 매 맞아 생긴 생채기는 할머니의 아픈 과거사의 흔적이다. 전 세계를 돌며 증언활동을 펼친 할머니는 1998년 5년5개월간의 법정투쟁을 통해 처음으로 일본법정으로부터 30만엔씩의 배상금 지급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결기 있게 일본정부와 맞선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척추압박골절로 병원신세를 진 데 이어 지난 6월 노환과 치매로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병상에 눕기 전에는 정대협이 운영하는 쉼터(평화의 집)에 머물렀다. "이대로는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어. 빨리 나아야 또 일본 건너가서 싸움 한번 야무지게 할 텐데"라고 말했던 할머니는 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길원옥 할머니가 병실을 찾아 "나 왔어요"라고 귓가에 소곤대도 눈을 뜨지 못했다.

이옥선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

#40. 이옥선 "심부름 다녀오는 길에 강제로 연행"

부산이 고향인 이옥선(87) 할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했다.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던 여관 주인은 이 할머니를 식모로 부려 먹다 울산 술집으로 보냈다. 이 할머니는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트럭에 강제로 실려 위안부로 연행됐다.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위안부' 피해를 당한 이 할머니는 해방 후 19세에 결혼해 중국 팔도진(八道鎭)에 정착했다. 군대 간 남편이 10년 동안 돌아오지 않자 29세에 재혼해 전처의 아들 내외와 함께 살았다.

74세인 2000년 영구 귀국했지만 사망신고가 돼 있어서 다음 해에 국적을 회복했다. 2002년부터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할머니는 지난 5일 백악관 관계자를 만나 면담을 하는 등 위안부 참상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위안부 보고서 55' 온라인 스토리뷰 보러가기: 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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