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순 할머니는 1919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나 14살 때 중국 둥안성(東安省)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가 해방이 될 때까지 12여년간 고초를 겪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 최 할머니는 구례에서 농사를 짓고 양아들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갔다. 마흔이 넘어 결혼을 한 후 뒤늦게 서울에 살림을 차렸다. 20여년 전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떴다.
#47. 최○○ '아이 낳지 못해 입양한 양딸에 의지해 살아'
1925년생인 최○○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를 겪은 후 아이를 낳지 못해 양딸을 입양해 키웠다. 2003년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최 할머니는 "남부끄러워 죽을 때까지 얘기하지 않으려 했는데…"라며 정대협에 증언을 했다고 한다.
#48. 최○○ '일본 정부의 태도에 그저 먼 곳만 바라봐'
1922년생인 최○○ 할머니는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낸다. 할머니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소고기를 꼽는다. 하지만 이가 많이 빠져 잘 씹지를 못해 소화기능이 약해지고 말았다. 이런 할머니를 위해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틀니를 하자고 권유해도 "얼마 안 있으면 죽을 텐데 뭘 하느냐"고 사양한다고. 위안부 운동 상황과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설명하니 그저 짧게 대답하면서 먼 곳만 바라봤다고 한다.
할머니는 무릎도 좋지 않고 손을 많이 떤다. 가족이 있지만 자주 찾아오기 힘들어 할머니는 요양병원 생활이 늘 외로운 듯하다. 활동가들과 작별인사를 하면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고. 활동가들은 한목소리로 "할머니는 손도 곱고, 피부도 하얘 웃는 모습이 소녀처럼 참 보기 좋다"고 말한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시리즈 중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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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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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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