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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와 노빌리스 피아노 트리오가 '베토벤 삼중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와 노빌리스 피아노 트리오가 '베토벤 삼중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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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예원학교 신관 콘서트홀.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와 노빌리스 피아노 트리오의 베토벤 삼중협주곡 협연이 끝나자 관객 전원이 기립했다. 공연 중간 예상치 않은 암전사태에도 침착하게 연주를 끝마친 연주자들에게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에 앞서 이상재 단장은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은 오케스트라 단원 40~50명이 연주하는 곡인데 단원들이 3인분의 역할을 하느라 고생했다"며 격려를 부탁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스티븐 프루츠만이 속해있는 노빌리스 피아노 트리오와 협연한 이 오스케트라는 2007년 이상재 나사렛대학교 교수가 창단했다. 단원 19명 중 12명이 시각장애인이며 이 중 9명은 앞이 전혀 안 보이는 1급 장애를 안고 있다.

이날 만난 단원들은 떨리는 기색 없이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아내 손을 붙잡고 부산에서 올라온 단원 오영인씨는 "플루트는 내 인생의 전부"라면서 수줍게 웃어 보였다. 오씨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다. 6학년 때 플루트를 접한 그는 음대에 입학해 음악가를 꿈꿨다. 그러나 막상 졸업장을 받고 나니 시각장애인인 그를 불러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오씨는 "좌절과 실망의 나날을 보내다가 플루트를 손에서 놨다"고 말했다. 그러다 2007년 이 교수의 제안으로 오케스트라에 합류했다. 오씨는 "잘 때 빼고 플루트만 생각한다"며 "직장인 복지관에서 퇴근하고 나면 하루 3시간씩 꼭 연습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악장 역할을 맡고 있는 김종훈씨도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김 악장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시각장애인으로 꾸린 팀이라니 이게 가능할까 사실 불안했다"고 창단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단원들은 악보를 통째로 외워야 했다. 눈짓과 몸짓으로 호흡을 맞출 수 없으니 귀는 더 열어야 했다. 김 악장은 "서로의 숨소리, 기척, 악기 소리를 더 잘 들어야 했다"며 "창단 연주가 끝났을 때는 귀로만 듣고도 화음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앞이 안 보여 거동이 불편한 데다 살고 있는 지역도 제각각인 이들은 1주일에 1번,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되는 정규 연습을 빼먹지 않고 참석한다.

창단 이후 현재까지 240여회 공연을 펼친 이 오케스트라는 2011년 10월엔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도 했다.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의 무대는 120년 카네기홀 역사에 처음이었다. 이 외에도 이들은 교도소, 장애인복지시설 등을 누비며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좀처럼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던 재소자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공연을 끝마치자 재소자 한 명이 쭈뼛거리며 일어섰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그는 "저렇게 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두 눈 멀쩡한 우리가 제대로 못 산 게 후회스럽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어둠' 속에서 '빛'을 연주하는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의 증거'다. 김 악장은 "시각장애인은 본인의 적성 꿈과 상관없이 안마사를 직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면서 "시각장애인도 노력하면 직업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김씨의 바람처럼 하트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는 자립을 위해 새로운 도약 중이다. 지난해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예술인단체 사회적협동조합 1호로 승인받았다. 숱한 재정난에 시달렸지만 자립 가능한 민간오케스트라로 거듭나는 게 목표다. 김 악장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일자리가 되어 음악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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