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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살인에 관하여(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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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사람을 죽이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일이 없는 것처럼
살인에 대해 치를 떨지만 생각해보면 그 또한 가증스런 위장이다.
많은 게임들은 살인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에 무기를 내주는 형식이다.
많은 영화나 소설들은 부지런히 사람을 죽이고 잔혹한 행위들을
개발하여 소개한다. 우리는 마음 속에서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혹은 악당이 되어 살인에 가담하고 죽은 사람을 처리한다.
우리의 언어들은 살인을 일상화하는 무의식적 장치들이다.
툭하면 ‘죽여버린다’ ‘죽고싶어?” “뒈져라” “죽어봐야 정신 차릴래?”
“목을 따버리는 수가 있어” “박살을 내버릴 거야” “찢어죽일 놈”을 외친다.
욕설과 과장들은 온통 죽음에 대한 위협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죽인다’는 말은 가장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이 또한 살의에 대한
경배가 아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야 말로, 인간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행위’이다.
국가와 법률과 도덕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살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그 행위가 나에게도 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를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린 모두가 타인을 살인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공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를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성(理性)이 작동하는 증표이다.
내게 가해질 수 있는 옳지 않음을 타인에게 가하지 않음으로써
사회와 관계를 안전하게 하는 ‘관점 전환(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의
능력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한 인간의 자제력은, 본능적인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살인 충동 자체가 본능에 더 가깝다. 스스로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혹은 스스로의 삶이 살인 행위를 해도 안전할 수 있다면,
살인은 훨씬 더 자주 행해질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지난 시대의
절대권력이 행하던 살인들은, ‘네가 받고자 하는 것을 타인에게 행하라’는
공평성의 황금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빈번하고 잔혹하게 행해질 수 있었다. 전쟁의 승자나 강자들이 저지른
살인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살인자들이 반드시 ‘근대적인’ 이성의 바탕 아래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동기들이 작동한다.
예를 들면 ‘결과적인 의미’에서의 자살 수단으로 살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내가 타인을 죽였으니 국가와 법률이 나를 죽여달라는 메시지를
생산하기 위한 범죄다. 위축된 자아를 보상받기 위해 저지르는
살인도 있다. 분노나 증오 혹은 억울함을 표현하기 위해 저질러지는
죽임도 가능하다. 자기 한 사람의 생명이 몇 사람의 생명과 맞바꿀 수 있다는
산술적 우월감이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살인이 조직의 명령이나
돈벌이나 직업적 명분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법률에 대한 불신으로
스스로 형을 집행하겠다는 의지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아무 이유도 없는 차가운 살인 집착증도 등장했다. 요즘 우상으로 떠오른
킬러에 대한 탐닉은 ‘살인의 동기’를 사소화함으로써 살인의 쾌감을
증대시키려는 은밀한 욕망의 작동이다. 영화들은 국가와 법률이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살인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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