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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수학의 사회

최종수정 2014.08.19 11:17 기사입력 2014.08.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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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학자대회서 대통령 사진 찍으면 뭐하나…'수포자' 급증하는 현실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세계 최정상급 수학자들과 함께하는 수학 축제인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가 오는 21일 막을 내린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에 이목이 집중되는 등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한편 국내 수학교육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수학 교육 일선의 교사들은 한국의 교육 풍토에서 수학을 '즐기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수학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학생들이 수학을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다. 이에 따라 교육당국은 학습자의 부담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두고 전반적인 분량과 난이도를 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해 2009년 개정 교육과정 개편 때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학습량이 기존보다 20%가량 감소했다. 예컨대 고교 1학년 과정에선 실수, 약수와 배수, 행렬 등이 삭제됐으며 문과에서는 지수함수, 로그함수, 삼각함수 등 학생들이 유독 어려워하던 개념들이 한꺼번에 빠졌다.

그러나 교육과정 축소가 학생들이 수학에 흥미와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수학 공부에 좌절해 수학을 어느 시점에서 아예 포기해버리는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대거 늘어난 것은 오히려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수포자가 된 이유에 대해 학생들은 대입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선택한 2학년 한모(18)양은 "아무리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해도 점수가 일정 이상은 올라가지 않으니 수학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며 "수학을 공부할 시간에 다른 영역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교과과정의 분량이나 난도와는 별개로 학생들이 이렇게 '아무리 공부해도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느끼는 데는 대입 제도에 따른 개별 학교의 평가 방식에 그 원인이 있다.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입시를 따로 준비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으므로, 중위권이 두껍게 형성되도록 학교 시험이 대체로 평이하게 출제된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수학시험이 갑자기 어려워져 중학교에서 스스로 '중위권'이라고 여겼던 학생들이 갑작스러운 성적 하락을 경험하기 쉽다고 현장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말한다. 대학 입시에서 학교 내신성적이 점차 중요해지면서한 학교 안에서 상대평가에 따라 등급을 구간별로 나눠야 하기 때문에 시험에서 변별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수학교사들은 등급에 따라 학생들을 분포시키기 위해 문제의 난이도를 전반적으로 높여 출제할 수밖에 없다.

고3 담임교사의 경우 진학지도를 할 때 어쩔 수 없이 '수학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이모(35)씨는 "고3이 되면 수학에 대한 학생들이 좌절감이 더 심해져 있는 상태이고 남은 시간도 별로 없어, 수학에 매달릴 바엔 다른 과목에 집중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최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모든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몇몇 학생이 아니라면 수능에서 수학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수학을 놓아버리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학생들이 속출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이 수학을 외면하는 데는 교과과정 자체보다 입시와 평가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수학교사모임 회장인 이동흔 숭문고교사 "수학은 우리나라와 같이 성적 지상주의가 만연한 교육현실에서 '줄 세우기' 가장 쉬운 과목"이라며 "교육과정을 아무리 줄여도 그 안에서 시험문제를 어렵게(변별력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출제해 학생들을 등급대로 줄 세워버리는 이상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학 학습에서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은 필즈상 수상자들도 한목소리로 얘기하는 부분이다. 필즈상 역사상 첫 여성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2살 때는 수학을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수학과 거리를 뒀다"며 "10대에는 재능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잉그리도 도비시 국제수학연맹(IMU) 회장은 한국의 수학교육과 관련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신감을 키워주는 게 중요한데, 한국인 수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 학교에서는 이를 유지시켜주는 게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동흔 교사는 "대입 제도 개선이 바탕이 돼야 하는 문제이므로 쉽지 않겠으나 'Pass/Fail'과 같은 방식으로 수학의 기초에 대한 바탕은 다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수포자 양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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