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생존' 명시한 영국 사회학의 창시자
'적자생존' 이론의 창시자, 허버트 스펜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인기는 서서히 식어갔다. 1880년대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인도, 남아프리카 등에서 벌인 전쟁에 반대한 것을 계기로 자국 내 여론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1899년 보어전쟁(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영국과 트란스발 공화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 당시 "내 나라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라는 발언 역시 그의 인기를 떨어뜨렸다. 그의 사후 세상은 또 한 차례 변했고, 스펜서의 이론과 발언들은 여기저기서 왜곡되고 남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사회주의 사상이 유행하면서 칼 마르크스가 스펜서의 자리를 차지했다. '적자생존'의 개념에 대한 오해가 커지면서 지식인들 사이에서 스펜서는 "적자생존을 옹호한 사회다윈주의자", "가난한 사람을 멸시한 인물"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허버트 스펜서의 국내 첫 번역서 '개인 대 국가'
그렇다면 그에게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고대사회에서 절대 군주에게 주어진 권한은 '신'이 부여한 것이었지만 현대의 의회나 대통령에게는 신성을 찾아볼 수 없다. 정부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관리 권한을 준 '관리위원회'에 불과하며, 어떤 내재적인 권위도 없고, 어떤 신성함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국민들에 의해 충분히 도전받을 수 있으며, 법에 의한 국가의 강제력 역시 무시할 권리가 있다는 게 스펜서의 주장이다. 정부가 해야 할 본래 임무로는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고, 약자에 대한 강자의 침해를 막는 것에 국한한다. 국가가 운용하는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한쪽에서 빼앗아 다른 쪽에 주는 로빈후드 역할에 지나지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13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작은 정부의 실현, 관료주의의 폐해, 잘못된 입법에 대한 책임, 복지에 대한 관점 등은 여전히 논쟁적이며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오늘날 국민은 국가의 입법과 행정의 실패에 지나치게 관대하며, 입법자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숭배하고 있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국가 권력의 비대화가 가져오는 행정당국의 굼뜬 대응'을 지적한 대목에서는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한 현 정부의 대응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 상황이 필요로 하는 모든 타협 속에 더 좋은 사회조직과 더 나쁜 사회조직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없다면, 진정한 진보는 있을 수 없다"는 스펜서의 경고는 오늘날에도 곱씹어볼만 하다.
(개인 대 국가 / 허버트 스펜서 / 이상률 옮김 / 이책 / 1만5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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