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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 바위에 '탁오대'라 새기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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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44)

[千日野話]퇴계, 바위에 '탁오대'라 새기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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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제작된 단양 지도에는 적성 아래에 있는 동헌이 보이고 그 왼쪽에는 향교와 명륜당 건물이 그려져 있다. 향교 앞에는 태종 때(1416년) 만든 정문 누각인 풍화루(風化樓)가 서있다. 풍화(風化)는 교육으로 풍속을 잘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 퇴계는 재임시절 향교에 큰 관심을 가졌고, 단양향교를 관아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현재는 상방리에 있는데(충북 유형문화재 107호), 100여년 전 지도에는 하방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대성전에서 봄가을 문묘에 제사를 지내고, 대성전 앞에 있는 명륜당에서 고을 아이들을 불러모아 가르쳤다. 또 이 지도에는 단양천변에 봉서정도 표시되어 있다.

봉서정 옆의 우화교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나온 말이다. 날개가 돋아나 신선이 되는 것. 유학의 나라를 천명하는 조선의 작은 고을 관청의 관문에 이런 도가적인 이름이 붙은 것이 기이하다. 이 우화교는 1753년(영조29년)에 단양군수 이기중(1697~1761)이 새롭게 정비하여 그 자리에 우화교 신사비(新事碑)를 세운다. 퇴계가 근무하던 시절에서 따져보면 205년 뒤이다. 지금의 위치로 말하면 단양군 농협 화단에 있던 것인데, 댐 건설 이후 단양 수몰이주 기념관 마당으로 옮겨놓았다.(충북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화교 신사비의 기문(記文)을 보면, 퇴계 시절의 이 다리가 눈에 짚인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은 깊고 그윽하며 돌다리 아래서 잡은 물고기는 정갈하다. 천태산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과 다를 바가 없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우화(羽化)라고 말하였다. 고기 잡는 아이들이나 나무하는 어른들까지 모두 그렇게 부른다. 다리는 있다 없어진 지 100여년이 흘렀다.(100여년 전(1653년 이전)에는 있었다는 얘기다.) 군에서 세역으로 군민에게 물자를 징발하여 흙과 나무를 이용하여 섶다리를 만들었으나 비가 오면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나는 객이 하천을 건너지 못해 탄식하며 손가락으로 냇물을 가리키며 원망하니 흐르는 물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태수 이자유가 군을 다스린 지 3년째에 이르러, 장인(匠人)을 고용하여 수레로 돌을 나르고 하천을 트이게 하였다. 다리 모양은 무지개가 뜬 모양으로 높기는 어른 키 3배가 넘고 넓기는 말이 서로 비켜갈 정도가 되었다."(1753년 3월 남유용(南有容)이 쓴 글이다)
퇴계 시절에는 그나마 실한 목교(木橋)가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우화교를 지나 하방리 개울가를 걸어 한 면이 평평한 바위가 있는 곳까지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그날 퇴계는 두향과 서각쟁이 하나를 데리고 이곳까지 걸어와 쉬었다. 바위 앞에 다다르면 습관처럼 그는 갓끈을 벗고 손과 발을 씻었다. 그는 탁오대(濯吾臺)라고 쓴 종이 하나를 꺼내 각(刻)하는 이에게 바위의 이마쯤에 새기게 하였다. 전서체로 쓴 아주 단정한 글씨였다. 두향이 궁금증을 못 이겨 물었다.

"나으리. 탁오(濯吾)라 하심은 초나라 굴원(기원전 3세기)의 '어부사'에서 인용하신 것이옵니까?"
 "그러하도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수 있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濯兮 可以濯吾足)고 한 그 구절에서 빌렸도다."

"창랑의 물이 맑고 흐림은 한 나라에 도(道)가 행해지느냐 아니냐를 상징한다 들었습니다. 나으리는 이곳에서 반드시 갓끈을 푸시고 또한 발을 씻으시니 이 나라에 도가 행해지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가 없사옵니다. 탁오대의 '탁오'는 갓끈을 씻으시는 것이옵니까? 아니면 발을 씻으시는 것이옵니까?"

뜻밖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고 퇴계는 두향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웃는다.
"갓끈(纓)과 발(足)을 이름에 쓰지 않은 까닭은 그 말을 생략한 것이 아니란다. 굳이 굴원처럼 세상의 도와 비도(非道)를 나눠 비판하기 위해 씻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미혹과 때를 씻어내려는 것이니라. 탁오가 탁오영이나 탁오족과 다른 것은, 바로 '나를 씻는 그 일'이 내겐 더욱 귀하기 때문이란다."
"아아, 나으리. 참으로 저의 어리석음을 씻어주는 말씀이옵니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이요루에 앉은 퇴계와 두향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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