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고려 말 급진적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호는 삼봉(三峰). 그의 고향인 충청도 단양의 도담삼봉에서 따왔다. 그의 집안은 지방토호에 가까운 향리였지만 아버지 때에서야 중앙관료로 올라섰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와 아내 모두 서자의 자식이었고, 특히 모계에 노비의 피가 섞여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홀대를 당했다. 조선을 개국한 뒤에도 '노비집안'이라는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조선을 세워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도 적서(嫡庶)나 양천(良賤)에 따른 신분차별을 주장하지 않았다. 특히 사농공상을 받아들이면서도 능력에 따라 벼슬에 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벤치마킹한 정치체제는 중국의 요순시대였다. 왕과 신하가 조화를 이루는 왕도정치를 통해 백성들이 배부르고, 도덕과 윤리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왕이 되려고 하지 않고, 신하가 되기를 자처했다.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했다"며 킹메이커(King-maker)의 길을 선택했다. 자신이 장자방이고 이성계가 한고조라는 것이다.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개국일등공신이 된 정도전은 도읍을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정치ㆍ법 체제를 정비하는 등 '조선의 설계자'가 됐다. 조선왕조가 그의 정신을 두려워해서였을까.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그는 조선 500년간 개국공신의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다. 고종 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설계 등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관직이 회복됐다.
정도전이 살았던 시절로부터 60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 '새 정치'를 내건 정치인이 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해 현실정치인 국회에 입성했다. 오는 3월 창당을 목표로 준비작업에 바쁘다. 지방선거에도 후보들을 내보낸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그에 대한 신드롬은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에서 비롯됐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새 정치'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안철수의 '새 정치'가 정도전의 그것과 닮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것일까. 시대가 바뀌어 겉모습은 달라지더라도 그 속에 담긴 철학과 정신만큼은 그러기를 바라 본다.
조영주 정치경제부 부장 yjc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