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사에 천문학적 소송 준비…19년·130만명 데이터 근거 제시
[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1,700,000,000,000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한 배경에는 이 숫자가 있다. 흡연으로 인해 매년 새어나가는 건강보험 진료비 액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흡연과 관련된 35개 질환에서 '불필요하게' 지출된 금액이자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46조원의 3.7%(2011년)에 해당하는 규모다. 1조7000억원은 건보공단이 지선하 연세대 교수팀과 함께 공단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해 130만명을 19년 동안 추적 관찰해 나온 수치다.
김종대 이사장은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비흡연자에 비해 흡연자가 각종 암 발생 위험이 2.9~6.5배 높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빅데이터 연구결과"라며 "(담배소송을 통해) 건강보험의 윤리적ㆍ도덕적 기준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이 '윤리'라는 단어까지 꺼내든 것은 형평성 문제에서 출발한다. 흡연자는 담배 한 갑을 살 때마다 354원의 건강증진부담금을 내고 있는 반면 정작 원인 제공자인 담배회사는 한 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해 8월 말 기준 4986만명(2206만가구)이 한 달에 낸 보험료(사용자 부담 제외)는 총 1조9000억원. 흡연으로 인한 재정 손실액이 우리나라 국민이 내는 한 달치 건강보험료와 맞먹는 셈이다. 이 '누수'를 막으면 6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취약계층 등 173만명(체납보험료 3조원, 2013년 6월 기준)의 절반에게 보험 혜택을 줄 수 있다. 4대 중증질환 보장성 확대에 필요한 재원 약 9조원(5년간)도 흡연 손실액을 보전받으면 추가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도 마련할 수 있다.
이처럼 담배소송의 당위성과 승소 확률을 높여줄 객관적 근거를 확보했으니, 소송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는 게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지난해 12월18일 담배소송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때만 해도 내부에서는 올 상반기께 소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이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소송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늦어도 1분기 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세포암(폐암)과 편평세포암(후두암)의 진료비 가운데 공단 부담금을 환수하기 위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는 목표로 수정됐다. 당장 24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담배소송 안건을 확정하기로 했다. 사실상 이달 소송의 포문을 여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흡연으로 인한 폐해와 건강보험 재정 손실액을 입증한 결과를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직무유기 아니겠느냐"면서 "담배 위해성을 입증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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