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최창환의 좌충우돌 에세이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곱게 물든 가을은 봄보다 아름답다". 연말에 고등학교 친구가 보낸 연하장 내용이다. 봄에 만난 우리들이 이제 가을을 맞았으니 함께 잘 늙어 가자고 격려한다. "벌써 가을인가? 겨울 참 길어졌네". 가슴이 잔잔해 진다.
선배들의 인생은 잘 짜져 있었다. 우리도 그럴 줄 알았다. 진학하고 취직하고 결혼했다. 집을 마련하고 자식농사 짓고 승진한다. 현직에서 애들 결혼시키고 은퇴하면 성공한 인생이었다. 어찌보면 단순했다. 어느날 퇴직은 빨라지고 은퇴후 삶은 길어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재취업은 어렵고 겨울날 양식인 저축은 부족하다. 은퇴자금이 10억은 있어야 한단다. 평균적 베이비부머에게는 어림없는 없는 목표다. 순자산이 40대는 2억6천만원, 50대는 3억5천만원에 불과하다. 수십년 모은게 이정돈데 어떻게 10억을 만들지.
"나이만 먹었지 큰 애나 다름 없어요". 대한민국 엄마들은 자녀들보다 애를 한명 더 키운다고 주장한다. 남편을 애 취급한다. 비틀즈의 존 레논은 명곡 우먼(WOMAN)에서 "여자여 이해하지요, 남자속에 숨어있는 작은 아이를(Woman, I know you understand the little child inside a man)"이라며 아줌마들의 손을 들어줬다. 남성비하가 아니다. '또하나의 여름'을 보내는 답일 수 있다.
"내안에 애 있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선후배 관계지만 일없이 같이 노니까 친구다. 당구도 치고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함께 한다. 만나면 애된다. 티격태격하고 내기하면서 몇 천원 가지고 아옹다옹 한다. 후배들이 현장을 목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사람 우리 선배 맞는거야". 이런말 나온다. 지휘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 평소에 억눌려 있던 '남자안의 애'가 고개를 내민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내안에 너 있어"라고 여인들을 흔들어 놨던 배우가 누구더라. 예쁜 여배우 김정은이 아직도 그 느끼한 남자안에 있는지는 항상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내안에 있는 애"는 질기게 함께 한다.
비즈니스맨들은 업무로 술집도 가고 운동도 한다. 훌러덩 벗고 사우나를 함께 한다. 일이 아니라 '남성의 놀이'를 같이하는 친구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다. 친구랑 노는게 아니라 함께 놀면 친구다. 일로 만난 친구는 일이 끝나면 만남도 정리되는 게 대부분이다. 같이 놀던 친구가 다른 동네로 이사가서 못만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섭섭해 하는 경우는 뭔가 배려를 했는데 배신당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여성들의 승진을 막는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사회생활이 갈수록 투명해지고 여성의 위상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을 핑계로 놀고, 놀면서 일하던 남자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애는 이기심이 많고 때론 짖굳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과 창의력이 있는 열린 존재다. 이런 애가 내안에 또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 애의 호기심을 깨워 다시 한번 성장할 기회가 있다. 또하나의 여름은 이친구와 함께 해야겠다. 조금은 느긋해 진다. 시인 킴벌리 커버거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며 '후회의 역설'을 통해 젊음의 역동성을 찬양한다. 여름이 한번 더 온다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길어진 여름은 삶을 인생의 초입으로 돌려놓은 타임머신일 수도 있다. 젊은 생이 한번 더 있는 셈이다. 괜찮은 인생이다.
이번주 목요일 큰 아들 동녘이가 논산훈련소에 들어간다. 가족들이 노래방에 갔다. 어깨동무를 하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함께 불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젊은날의 생이여" 아들, 같이 시작해 보는 거야. 살짝 묻어간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